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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소여 비행 클럽 - 판타스틱 청춘 질주 사기극
하라다 무네노리 지음, 임희선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톰소여의 모험'은 아직도 종종 애독하고 있는 나만의 명작이다. 스물 여섯해를 살았지만 아직도 인형과 소꿈놀이 세트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정신 못 차리는 나는, 그렇다. 아직 소녀의 티를 깨끗이 벗어내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나보다 나이를 더 먹은 사람들이라도,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라도 완전히 소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 않을까. 세월에 찌들어 잊고 살 뿐이지 소년소녀적 감성은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톰소여 비행 클럽'이란 책을 발견했을 때, 마치 보물섬에서 낡은 책을 발견해낸 모험가처럼, 가슴에서 뜨거움이 치밀어올랐다. 그렇게 이 책을 손에 들고 휘리릭- 책장을 넘겨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책 속 주인공들의 모험 스토리의 열정이 가득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얼핏 보면 만화책 같기도 하고,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포스는 여고 시절에 읽었던 로맨스 청춘 소설과도 같았기에 단숨에 책을 읽어내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의 시간 동안 책을 품에 안고 돌아다녔다. 의도적으로 들고 다니는 이 책을 본 가까운 지인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뜨거웠다. 다 읽고 난 다음 빌려 달라는 주문도 쇄도했다. 이에 나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언제 다 읽을 지 모르니 일찌감치 책을 사서 읽는 편이 더 빠를 거라고 약을 올렸다. 기분이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가방은 내던져 놓은 채 그 자리에서 책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꽤 두툼한 페이지가 금세 왼쪽 편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 하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아니 지금도 갈망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면 '돈', '공부잘하는 똑똑한 머리', '예쁘고 늘씬한 몸매와 얼굴'이 아닐까. 그런데 이것이 이 책, "톰 소여 비행 클럽" 속 주인공들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노무라 노부오는 타고난 손재주(?)로 소매치기에 재능이 있어 원한다면 언제든지 사람들의 지갑을 털 수 있다. 한마디로 돈이 마르지 않는 것이다. 이 능력을 간파하고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이려는 가부라기, 일명 '수학'이라 불리는 이 소년은 별명 그대로 수학에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다. 수학과 물리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그인 것이다. 학창시절, 수학에 머리를 싸매던 나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는 재능이었다. 그리고 이 두 소년의 사이엔 명문 여고에 다니는 예쁘고, 발랄하고, 다소 엉뚱한 매력까지 있는, 남학생이라면 언제나 한번 꿈꿔봤음직한 모습을 한 소녀, 기쿠치가 있다. 그리고 또 한 명, 치사토 라는 할머니의 존재다. 이 할머니는 전직 전설의 소매치기로, 노부오에게 소매치기 기술을 전수해주는 동시에, 젊은 나이에 그렇게 살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진심으로 충고해주는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로 이 책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여느 어른들 마냥 이 비행 소년소녀를 다그치거나 잔소리를 해대는 법이 없다. 그저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들의 비행이 앞으로의 미래에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앞서 살아본 인생의 선배로서 진심으로 말을 해줄 뿐이다.
수학의 제안으로 노부오, 기쿠치, 치사토 할머니가, 머리나쁜 아들을 둔 야쿠자가 자신의 아들을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인쇄소에서 대학시험지를 빼돌릴 계획인데, 이를 다시 빼돌리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이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책제목 그대로 온갖 비행을 저지르는데, 이 비행들 역시도 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일탈 행위들이다. 예쁜 여자친구와의 잠자리, 기분을 좋게 해주는 대마초 흡연, 상황을 염탐할 수 있는 도청 등 말이다.
오로지 장미빛 대학생활을 꿈꾸는 소년소녀의 바람으로 벌어지는 비행들과 이 과정을 방해하는 돌발적인 상황들 앞에 당황하는 노부오, 수학, 기쿠치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여간 재밌지가 않는게 아니다. 마치 내가 그 속에 뛰어든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분명 이들이 하는 짓이 나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왠지 이들의 계획이 무사히 잘 치러졌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차츰차츰 성장해가고 있는 소년 소녀의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끝부분이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다른 결말을 생각해본다 하더라도 별다른 엔딩이 있을까 싶어 나름대로 깔끔하고 괜찮은 마무리라는 결론이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이 책을 내 책상 가까운 곳에 꽂아두었다. 조금이라도 이들과 가까운 곳에 있다면 내 남은 인생도 이들처럼 위험하지만 경쾌하고 유쾌하게 흘러 기분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이 달콤한 청춘의 독에서 헤어나오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