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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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굴지의 광고회사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무교육을 시켜준다는 공고가 붙은 것을 보고, 평소 광고에 흥미가 있던터라 지원을 했고, 서류전형에 통과가 되어 면접,필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그 광고회사 건물을 찾은 적이 있다. 세련된 건물 안에서 세련된 옷차림과 표정으로 각자의 창작을 위해 골몰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무언가 동경하고 싶은 아우라를 느꼈던 것 같다. '디자인'은 내게 그런 존재다. 보이지 않는,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너머로 뭔가 근사한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다시 태어나면, 아니 이번 생에서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꼭 배워보고 싶은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그 일을 하고 있는 현직 디자이너가 쓴 책,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란 책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 홍동원은 61년생 남성으로 20대 중반인 내겐 거의 아버지뻘인 사람이였고, 그 세대 사람이라 한다면 꽉 막힌 사고방식에 갇혀 있을 것이 분명한데 디자인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책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포스 그대로, 홍동원이란 작자는 20대 중반의 나보다도 훨씬 젊은 생각의 소유자였다. 또한 디자인이라는 시각적인 일을 다루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글 자체가 무척 다이나믹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다. 이 럭비공같은 디자이너 홍동원이 쓴 글과 함께 그의 생각들, 경험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나 자신이 디자이너가 된듯하다.

또한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디자인이란 직업에 지나친 자부심 따윈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우리와 생각이 같은, 세련되지 못한, 하지만 그럼에도 디자인이란 일 자체의 가치성만큼은 누구보다 인정하고 나서는 그의 중심이 느껴져 이 책은 더욱 재미있게 읽힌다. 한시가 급하다며 족치는 통에 밤샘작업으로 초죽음이 되는 디자이너, 그렇게 족쳐놓고도 완성해간 시안을 보고 결론을 통보할때는 도대체 뭘하고 앉았는지 문밖에 세워두고 기다리는 통에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이곤 하는 디자이너, 정말로 그 유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유행의 창시자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너도나도 빈티지 패션에 열을 올리는 대중들의 모습에 헛헛해하는 디자이너... 등등 갖가지 생각과 고민, 갈등에 빠지는 디자이너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흥미롭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면 '디자인'이란 것이 그리 멀리있는 근사한 무엇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우리의 일상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알게 된다. 친절하게 보이는 명함을 만들어달라는 검찰 관계자의 이야기에서부터,  'I♥NY'에 얽힌 에피소드, 지하철 노선도 다이어그램의 창시자 이야기(교보문고에서 헤매는 사람도 많던데 왜 교보문고에는 이런 지도가 없나..하는 작가의 입담에 깔깔 웃었다. 교보문고에서 헤매본 적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인지라...ㅋㅋㅋ), 예술적으로 인정은 받지만 한국인의 체형엔 맞지않아 붕뜬 자세로 앉게 만드는 의자 디자인 이야기, 한글, 자동차, 광고, 캐릭터 등등에 걸쳐 다방면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디자인의 세계 에피소드들은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만든다.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있는 이 시대의 디자이너들.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동경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디자이너들의 피폐한 생활을 알고 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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