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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전 - 제3회 이화글빛문학상 수상작
정시은 지음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9월
평점 :
고등학교 3학년 때 꽃피는 오월, 이화여대를 한번 찾은 적이 있다. 백일장 참가를 위해서였다. 여대 캠퍼스답게 아기자기하고 웅장하면서도 여성미가 느껴지는 학교 건물을 구경하고 다니면서 저절로 시상이 떠오르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땐 백일장에서 상 하나 타지 못하고 씁쓸하게 돌아왔고, 그 돌아오는 길에 이화여대 백일장 주최측에서 한 권씩 나눠주었던 작년 백일장 수상작품집을 받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읽었었다. 수상작 하나하나마다 재기발랄하고 참신하여서 이화여대 측이 권장(?)하는 작품세계가 어느 정도 무엇인지 감이 잡혔다. 한 학년만 더 낮았어도 내년에 한번 더 도전하는건데...하고 서운해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5년만에, 백일장의 로망! 이화여대의 자체 소설 공모 당선작, 그 참신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을 다시 만났다.
82년생 여대생이 쓴 <연화전>이란 작품은 첫 시작부터 이 이야기가 픽션인지 팩션인지조차 헛갈리게 만들며 시작한다. ‘청운계’란 모임 소속의 여성들이 지은 것으로 추측되는 이 소설 ‘연화전’을 모두 소각하노라- 하는 임금의 명령과 함께, 마치 금서를 몰래 읽는 듯한 아찔한 긴장감을 선사하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청운계’는 과부들의 모임이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많은 과부들이 등장하고, 그 과부들의 억눌린 욕망과 그 욕망을 무시한 채, 가문의 위신을 위해 몹쓸 짓도 불사하지 않는 양반들의 태도를 조롱하고 풍자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런 소설은 작가가 여대생이어서 가능한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한 가정에서 아이낳는 기계로 밖에 존재가치가 없었던 여성들은 남편이 죽으면 따라서 죽어야 마땅할 무의미의 존재였다. 이 무기력한 감정은 아무리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대생이라도 지금 현재 느끼는 여성으로서의 차별이 있기에, 그 옛날 여성들이 느낀 그것이라 해도 그 감정을 현대 여대생 또한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결혼하기도 전에 죽어버린 남편으로 과부가 된 연화. 그 남편없는 시댁에서 십년이 넘는 세월을 독수공방하며 산다. 그리고 그 집엔 바람둥이자 꽃미남인 시동생 연균이 있는데 이 연균은 연화와 결혼할뻔도 했던 사이다. 하지만 이미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던 남자 선균은 부모님께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하지만 천출 출신인 그 여자와 떨어뜨려놓기 위해, 부모는 선균을 억지로 연화와 혼인을 시킨 것이다. 그렇게 결혼하기 전날 밤, 선균은 성기가 잘린 채로 무참히 죽어있다. 한 여자만 바라보며 순정을 바친 선균과는 달리 동생 연균은 처와 첩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럼에도 쉴새없이 다른 여자들을 탐한다.
연화는 시어머니의 명으로 산속 깊은 절로 들어가게 된다. 절에서 자살을 해라는 시어머니의 암묵적인 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화는 우여곡절 끝에 죽지 못하고 심간지당이라는 능력있는 과부가 만든 ‘청운계’라는 모임에 소속이 되면서 서책에 눈을 뜨고, 스스로 글을 창작하며 억눌렸던 욕망을 풀어낸다. 이 ‘심간지당’이라는 이름 속에도 신사임당을 풍자하는 웃지못할 해학이 담겨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소설은 한번 손에 들었다하면 멈출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 이 반전들은 읽는 재미를 위해 밝혀두지 않겠다. ‘연화전’이란 소설 자체가 쓰여지게 된 계기부터 소설이 쓰여지기까지, 이 과정이 바로 ‘연화전’이란 설정이 되면서 소설의 재치는 극에 달한다. 여대생의 깜찍한 발상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 ‘연화전’. 앞으로도 그녀의 소설이 매우 기대가 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