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미러링 - 혐오의 시대와 메갈리아 신드롬 바로보기
박가분 지음 / 바다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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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과 <혐오의 미러링>이 도대체 뭐가 다른가?

 

내가 과거 일베를 다룬 <일베의 사상>과 달리 메갈리아/워마드를 다룬 <혐오의 미러링>은 전혀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는 비난을 가끔 듣는다.

 

나로서는 의아할 따름이다. 오히려 <혐오의 미러링>은 <일베의 사상>과 형평성의 원칙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잣대로 접근했다.

 

혹자는 <혐오의 미러링>이 너무 객관적인 통계를 인용하면서 양적인 접근에 치중하고 <일베의 사상>과 달리 참여관찰연구법과 같은 질적인 방법을 배제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사실과 거꾸로이다. 오히려 나는 <일베의 사상>에서 참여관찰법을 거의 배제했고 오히려 <혐오의 미러링>에서나마 비로소 참여관찰법을 더 중시했다.

 

일베충 놈들이야 굳이 회원가입을 안하고 또 그 놈들을 인터뷰를 안해도 왜 자기들이 그런 멍청하고 혐오스러운 짓을 하는지 그 대답이 이미 일베의 공개게시판에 쓰여진 게시물만으로도 뻔히 보인다. 그리고 '일베'의 경우 너무 구체적인 참여관찰법은 그들에게 변명거리만 늘릴 뿐이다. 유럽의 네오나치들도, 일본의 재특회도, 어느 나라의 젊은 남성 극우파들이나 자기들이 왜 그런 멍청한 미친 짓을 하는지 다 똑같고 비슷 비슷한 변명을 한다. 그래서 그 놈들이 하는 이야기를 내가 같은 자격으로 듣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미 <혐오의 미러링>에서 말했듯이 일베유저가 폭력범이라면 메갈리아/워마드 유저는 지능범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접근방식을 달리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참여관찰법을 배제했다는 비판은 오히려 <일베의 사상>에나 유효하다. <일베의 사상>에서는 같은 남성으로서 왜 저들이 병맛인지 너무나 잘 이해가 되서 굳이 복잡한 접근은 취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히려 참여관찰법은 '폭력범'이 아니라 자신의 사이버테러에 이런 저런 대의명분을 갖다붙인 '지능범'인 메갈리아/워마드에게 유효하며 나는 그 방법을 오히려 <혐오의 미러링>에서 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일베와 달리 메갈리아/워마드의 여성은 나에게 타자이므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애초부터 회원가입에서부터 남혐글을 요구하는 거기서 남성혐오 글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서 나 자신이 일부러 여성지인의 아이디를 빌려서 남성혐오 글을 올렸다.

 

그 잘난 '참여관찰법'이야 여성지인들로부터 아이디를 빌려서 메갈리아/워마드 회원가입을 하고 또 등업을 위해 남혐글(ex. 한남 실잦들 자들자들하노ㅋㅋ)을 일부러 올리면서 충분히 잘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일베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면서도 그에 비해 젠더혐오 담론에서 과잉대표된 사이트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이 방식이 나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 혐오하는 타자에 접근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한 인간이 있었는가?

 

이건 본인이 무슨 책을 읽고 무슨 담론을 썰 푸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자신의 실천에서 증명되는 사항이다.

 

이런 사항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서 대뜸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일삼는 형편 없는 인간들을 위해 쓰는 글이다. 평점테러는 지금까지 <일베의 사상>에 대한 테러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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