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아방가르드와 일상의 심미화(진행중)
원래는 주말에 해놓으려고 했던 정리인데 다소 지체된 일을 해치우려고 한다. 볼프강 벨슈의 <미학의 경계를 넘어>(향연, 2005)에서 아방가르드와 일상의 심미화를 대비시키고 있는 대목을 간단히 정리해두는 게 일차적인 목표이지만 곁다리 얘기들도 포함될 듯하다(이브 미쇼의 책들이 함께 다루어질 만하다). 다른 일들에 발목뿐만이 아니라 허벅지까지 붙들린 상태이지만 <일상생활의 혁명>에 관한 리뷰를 옮겨오면서 다시금 등떠밀리며 떠올리게 된 일부터 처리하는 수밖에.




먼저, 볼프강 벨슈(벨쉬)는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책세상, 2001)로 먼저 소개되었던 독일 철학자이며 현재는 예나대학교에 재직중이라고 한다. 그의 <포스트모던적 모던>은 이미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을 정도로 현지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듯하고, <미학의 경계를 넘어서>도 그의 책으론 처음 영역(1997)되면서 학문적 성가를 널리 알린 책이다. 역자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미학자 중 한 명"이다.

원저인 독어본이 1996년에 출간됐으니 영역본은 바로 이듬해에 나온 셈이다. 그리고는 또 8년 후에 한국어본이 나온 것이고. 국역본이나 영역본 표제에서도 암시받을 수 있지만, 저자는 "전통 미학의 관점에 안주하기보다는 미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학자"이며, "현대 예술, 건축, 음악 및 디지털 전자 매체 세계에 대해서도 미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확장을 통해 미학의 경계를 허물고자 시도"한다. 그러고 보면, 역자인 심혜련 교수의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살림, 2006)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자연스레 연장한 것으로도 보인다(역자 자신이 벤야민 전공자이기도 하지만).
전체 3부로 구성된(영역본은 2부로 재구성돼 있다) 책의 제1부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미학의 '새로운 시나리오', 곧 현대의 심미화 과정이 낳은 이러저러한 결과들에 대한 점검이다. 그 중에서도 첫번째 장은 심미화 과정들 일반에 대한 검토와 비판적 전망으로 채워져 있다. 그 '심미화 과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는 지금 미학의 열기를 체험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꾸미기를 넘어서 도시 조형과 경제를 거쳐 이론에까지 이르고 있다. 현실의 많은 요소들이 점점 더 심미적으로 재형성되고 있으며, 현실은 점점 더 심미적인 가설로서 중요시되고 있다."(21-2쪽)

'개인적인 꾸미기'란 자기 스타일의 창조를 말한다(저마다 제멋에 겨워 사는 게 현대인들 아닌가?). '심미적인 가설'이라고 번역된 건 영역본에 따르면 'aesthetic construct'이다. 마지막 문장을 영역본을 토대로 옮기면 "현실의 점점 더 많은 요소들이 심미적으로 치장되고 있고, 현실이란 것 자체가 우리에게 점차 심미적 구조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심미화 경향을 벨슈는 '표면적 심미화(surface aestheticization)'와 '심층적 심미화(deep-seated aestheticization)'으로 구분하고 이에 대해서 상술한다(물론 그의 초점은 '심층적 심미화'에 맞추어진다).

저자가 표면적 심미화로 분류하고 있는 항목은 (1)현실의 심미적 장식, (2)문화의 새로운 모체로서의 쾌락주의, 그리고 (3)경제적 전략으로서의 심미화, 세 가지이다. "표면적인 측면에서의 심미화는 현실을 심미적 요소로 치장하고 심미적인 분위기로 실재를 아주 달콤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이러한 표면적 심미화는 아름다운 현실과 우리의 감각과 우리가 원하는 형태에 상응하는 현실에 대한 기본적이고 오래된 요구와 연관되어 있다."(23-4쪽)
뒷문장은 영역본에 따르면 "This certainly takes up an old and elemental need for a more beautiful reality corresponding to our senses and feeling for form"(2쪽)이고, 이걸 다시 옮기면 "이것은 형태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느낌에 부합하는 보다 아름다운 현실에 대한 오랜, 그리고 기본적인 요구와 확실히 연관되는 것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

벨슈도 인용하고 있는 책이지만 이러한 심미화 경향의 짝을 이루는 것은 '심미적 인간'이다(뤽 페리의 이 책은 <미학적 인간>(고려원, 1994)으로 번역/소개돼 있다). "심미적 인간은 예민하고 쾌락적이며 교양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특히 뛰어난 취향을 가진 인간이며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논쟁하지 않는다."(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