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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1월
평점 :
🩵
'좋은 어른' 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 이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이란, 구원자 혹은 구출자였다.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주는 사람'
나의 어린이 시절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던 것 같다.
관심있는 척, 도움을 주는 척 손을 내밀었던 어른들은
내가 그 손을 잡으려는 순간 손을 거두어들였다.
🩵
어린이들과의 관계맺음에 있어서는
어른들과의 그것보다 더 많이 애쓰는 편에 속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하느냐고,
자기의 득실도 좀 따져보라는 말에,
이렇게 생겨먹을걸 어쩌냐고 웃으며 대답하곤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어린이 친구'가 필요한 것 같다.
(p.314)
- 얘 친구 되게 많아요.
- 아니야, 그냥 아는 애가 많은 거야
- 그게 친구 아니야?
- 아니지, 놀아야 친구지.
(p.318)
어린이들이 친구를 원하는 만큼,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 친구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한 수고를 할 가치는 충분하다. 친구 덕분에 나도 계속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게 되니까.
🩵
나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착한 어린이가 잘 자라서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과 '착한'은 그 의미가 다른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개념 때문인지
나는 착한 아이도 착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인지
어린이였던 내가 좋은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좋은 사람이 된 나의 모습을.
🩵
(p.325) (그래도) 계속 손톱만한 용기라도 내보려고 한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내 생각에는 '친절'만큼 구체적으로 세상에 윤기를 더라는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친절을 이용하거나 나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 말이다. 그럴 테면 그러라지. 그런 사람들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줄 친절이 줄어들면 안 된다. 그러면 내가 지는 게 되니까.
(p. 327) 날마다 보는 험악한 뉴스만큼, 험악한 뉴스에 무감해지는 나 자신에게 겁이 난다. 그럴 때 친절해지기로 한 번 더 마음을 다진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주려면 상황 파악도 잘 해야 되고, 용기도 내야 한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낼 수 있는 용기는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소중히 여기려고 한다. 마지막깢지 가지고 있는게 '친절함'이라면 나는 그에 걸맞은 판단력도, 용기도 가고 있을 테니까. 언제까지나 다정하고 용감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게 나의 장래희망이다.
😃 나에게도, 나에게 의문을 품는 누군가에게도 앞으로는 활짝 웃으며 얘기해줘야지.
"내 장래희망이 언제까지나 다정하고 용감한 어른이라서 어쩔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