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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1년 3월
평점 :
다이나믹하게도 산다.
남들하는 세계일주와 많이 다르다.
서른 살 독신, 대형 회계사 애널리스트로 하루에 백만 원을 넘게 버는 고액 연봉자 코너 우드먼.
남 부러울 것 없어뵈는 그가 신의 직장 그만두고 달려간 곳은 세계의 전통시장이다.
책상 앞에서 벗어나 발로 뛰며 세계 경제를 체득하겠다는 특별한 목표를 갖고 말이다.
모로코, 수단, 남아프리카 공화국, 잠비아, 인도, 키르기스스탄, 중국, 타이완, 일본, 멕시코..
참 다양한 문화속에서 다양하게도 장사하더라.
보고 듣고 느끼는 여행 플러스 각국의 문화적 특색을 반영한 거래로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돈 보다 귀한 경험까지, 일거삼득이다.
그러니 이야기거리도 풍부해 웬만한 모험 영화보다 낫다.
그는 5000만원 가량을 밑천삼아 6개월 동안 두 배를 불려오기로 계획하고 여행을 떠났다.
책 읽기 전 '세계일주로 얼마나 큰 돈을 벌었길래 책을 썼을까?' 속물적인 호기심이 먼저 생기더라.
내 호기심에 부응한 큰 돈을 벌었던 건 아닌 것 같다.
투자한 본전은 커녕 마이너스로 끝난 거래도 꽤 많았다.
변변한 케이블카 하나 없이 구멍이 숭숭 뚫린 바구니 하나에 의지해
산과 산을 오가는 타이완 오지 마을.
그는 고소공포증을 견디고 그곳에서 품질 좋은 우롱차를 사왔지만
우롱차에 제대로 우롱당했다.
일본에 가져가면 꽤 마진율이 높을거라 예상했지만 멋모르고 비싸게 물건을 떼 온 탓에
가격절충이 어려워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서툰 일본어가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길거리에서 한 봉지씩 낱개로 팔아야 했다.
그래도 물건이 남아 배낭에 담아와야 하는 수모를...ㅋㅋ
완벽한 마이너스 거래였다.
그러나 실패를 교훈삼아
'정보가 부족한 품목에 섣불리 투자하지 말 것!' 이라는 뼈아픈 대전제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에선 또 어땠나.
일본인들이 생선이면 사족을 못 쓰고, 사시사철 매끼 생선이 식탁에 오르는 것을 보곤
저자는 생선을 팔겠다고 팔 걷어부친다.
직접 배를 빌려 선주와 함께 하루종일 일본 앞바다를 휘젓고 다니며 전갱이 낚시를 한다.
낚시가 서툴러 초반에 미끼를 많이 써버리니
익숙해질 즈음 미끼가 바닥 나 더 잡고 싶어도 못 잡을 판.
다행히 선주가 낚시에 능숙하여 간신히 저장 탱크를 채우고 돌아와
애초에 작가가 반했던 활력이 펄떡이는 경매시장에 자신의 전갱이도 내놓는다.
큰 돈이 오가는 거대 참치들에 비하면 그의 전갱이들은 참 보잘 것 없다.
낙찰되어 받은 돈을 배 빌린 값으로 지불하고 나니 그에게 돌아온 돈은 단 몇 엔 뿐..
그러나 그는 벅찬 기쁨을 참지 못하고 선주를 끌어안고 고마워 한다.
그 때처럼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고 회상하는 저자.
24시간을 온전히 활용하며 고된 노동을 통해 얻은 보람,
해 뜨는 바다를 맞이하며 느낀 감동과 가슴벅참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던 듯 하다.
나까지 가슴이 뭉클하더라. 고고한 백수 생활 접고 당장 신문배달이라도 하고 싶더라.
앞서 말했 듯, 작가는 적은 밑천으로 소규모 거래를 했고,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다니며
일정한 시간적 제약을 두고 장사를 했다.
따라서 거래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졌고 판매전략도 특별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전략은
그 나라의 특색있고 질 좋은 제품을 직접 발품팔며 싸게 사서 또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파는 것이다.
직접 발품 판다는 게 지방에서 서울 남대문 올라와 물건 떼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러 정보통을 수소문하여 영세하나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곳을 찾아다니는데 그 사연이 또 배꼽빠진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잠비아의 커피 농장, 중국 위장지구 옥 광산, 모로코의 카펫 가내 수공업 마을 등이다.
모두 산세 험하고 사람 드나들기 힘든 곳에 있었지만 작가 특유의 열정으로 기어이 찾아가 물건을 가져왔다.
그러면서 다른 여행자들은 보기 어려운 주옥같은 숨은 풍광을 만끽하는 기쁨을 맛 보기도 한다.
또 다른 전략은
물질적 가치를 뛰어넘는 사연이 있는 품목을 지정하는 것.
모로코 오지 마을 아낙들은 카펫을 손으로 직접 짜고 카펫 도안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고 한다.
증거를 위해 마을 사람과 사진까지 찍어와 이야기와 곁들여 팔았다.
또 중앙 아프리카에선 마을 농사를 코끼리가 매번 망쳐놓는 통에
코끼리가 싫어하는 칠리 나무를 밪을 빙 둘러 심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친근한 이야기가 있는 칠리 소스를 판매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 얼마나 재미있고 인간적인가
하나 더. '에스키모인에게 얼음을 판다' 전략
그들에게 얼음을 판다는 게 멍청한 짓 같지만
얼음에도 더 시원한 것, 더 단단한 것, 색깔있는 것 등 다양한 얼음 수요가 분명 있을테니
그 틈새 시장을 노리겠다는 것.
그래서 칠리소스가 흔한 인도인들에게 칠리 소스를 팔고, 수단에서 낙타를 팔고, 키르기스스탄에서 말을 판다.
조상대대로 내려 온 세계의 온갖 전통시장.
그 안에 겁 없이 뛰어든 그의 용기가
이 책을 읽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힘이 될 것 같다. (물론 내게도..^^)
세계 경제를 결코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
거대 기업간의 수백억 거래와 매몰찬 기업 윤리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가 고생해서 깨달은 것.. 나도 깨닫게 되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