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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 개정판
야마자키 후미오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존엄한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의사이자 이 글의 저자인 그가 존경스럽다.
병원은 병을 고치러 오는 곳이지 죽으러 오는 곳이 아니기에
죽음이 완연한 말기 암 환자에게 병원은 냉정하고 기계적인 곳이다.
호스피스에 대한 개념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일반 병원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병원은 의사, 간호사, 환자 모두의 일상이
긴박하고 쉴새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의사, 간호사들이 호스피스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고 최대한 노력해도
존엄한 임종을 맞이하도록 완벽한 배려를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탄생을 축복하듯이 떠남도 사랑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죽음은 누구나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숭고한 의식이다.
그가 술회한 몇몇 일화를 보면서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그려보았다.
가족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슬퍼하는 그들을 위로하며, 고요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이 생겼다.
내가 맘만 먹으면 그렇게 죽을 수도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의사를 잘 만나야 가능한 일이겠다는 불안한 결론이 섰다.
지금 우리는 호스피스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을까.
시설 확충이나 연구에 대해 계획은 있을까. 절망스럽지만 없지 않을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호스피스에 대해 열려있는 의사를 만나지 않는 이상,
지금의 병원 현실과 정책으로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챙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말기 암 환자에게 병명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환자의 극복 의지를 꺾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사경을 헤매며 자신의 병명을 물을 때까지도 비밀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의사의 거짓 병명을 듣고 곧 나을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식사량은 점점 줄고 몸은 쇠약해져 간다.
병이 그들의 몸을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면서
견딜 수 없는 상실감과 무력감에 절망한다.
결국 심신이 망가지면서, 극도의 공포감과 같은 정신적 패닉 상태를 경험한다.
저자는 패닉 상태의 한 말기 암 여성을 회상한다.
그녀는 산호 호흡기를 패대기치고 집기를 부수며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병명을 가르쳐 달라며 의사에게 따진다.
자신을 속여온 헛된 희망과 점점 사그라지는 생명의 신호 사이의 괴리감을
더 감당하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제발 자신의 병명을 가르쳐달라고 매달리는 환자에게 의사는 여전히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누구의 안정을 위해서란 말인가.
그는 결국 병명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환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잠시 충격을 받았지만,
이미 예견하고 있던 일이기에 담담히 받아들이고, 패닉 상태에서 빠져나왔으며,
오롯이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가족과 작별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환자를 시작으로 그는 몇몇 환자들에게 병명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생각해보자. 과연 내가 석 달 남은 말기 암 환자라면..
병명을 숨기는 게 날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껏 살아온 날 보다 더 존중받고, 위로받아야 할 남은 생 동안
빈 껍데기 다루듯 생명 연장술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의사들에게
내 몸과 마음을 모두 맡겨도 되는 걸까?
죽을 때까지 죽을 병인 걸 모르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희망을 품고는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하지 못하고, 만족할 추억도 남기지 못한 채
의료진은 물론 애틋한 가족들까지 의심하느라
정작 삶을 마무리 할 시간을 허비한다면?
살아 생전 불 같은 고통을 호소할 땐 의지를 굳건히 하고 참아야한다며
그들의 호소를 무시하고 고통을 경감할 주사는 주지 않더니,
이제 그만 숨을 거두고, 고통에서 헤어나오려는 찰나에
의사들이 심장마사지와 인공호흡 등, 불필요한 생명 연장으로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훼방놓는다면?
끔찍한 지옥을 별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있는 신체와 그 동안의 시간만 존중해왔다.
이미 노인 인구 증가율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우리 나라가 점차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좋게 보면, 존엄한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인구가 증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은 시작이 절반이기도 하겠지만, 마무리가 전부이기도 하다.
더 가치있고, 더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해
호스피스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 시설 확충은 물론
호스피스의 당위성을 확고히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일본은 이 책을 필두로
병원들이 앞다투어 호스피스 병동을 늘리고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의료체계를 점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도 부디 그 많은 의료보험료 까먹지만 말고
호스피스에 조금이라도 힘쓰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