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소담 한국 현대 소설 1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에 익은 기업 이름 하나를 클릭해 입사지원 버튼을 클릭한다.

기계처럼 내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자기소개란에 이른다.

`21세기는 창의성의 시대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창의성을 크게 발휘했던 일 세 가지를 쓰시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문학작품을 본 후 느낀 점 조차도  

다섯 개 중에 하나 골라야 했던 우리다.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라는 논술조차 서울대 출신 강사가 알려준 대로 '새롭게'써야 했던 우리다.

교복 단추에 색깔 한번 못 칠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창의성?

그게 중요하다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 와서 창의성을 내놓으라고?

시키는 대로 안 살면 평생 낙오되어 굶어 죽을 것처럼 협박해놓고,

이제와서 네 뜻대로 한 게 뭐가 있냐고 꾸짖는 모양새라니,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

창의성 좀 보자고 했다고, 또 쪼르르 달려가 이제 내 창의성이에요, 하는 애들이 진짜로 창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본문 352p 중-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읽은 부분이다.

창의적 인재 발굴 어쩌구 하면서도 내가 중고딩때나 지금 중고딩들이나

여전히 창의적이지 않은 교육을 받고 있고, 출세도 창의력 높은 순위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실~ 같은 학교 또는 같은 지역출신이라는 유대감이나 인맥이 더 잘 먹힐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들 좋은 대학 가려고 기쓰는 게 맞다.

 

책 읽을 시간이라도 있는 내가 돌연 민망해진다.

정말 요즘 사회초년생들 이렇게 치열하게 사나?

직장 상사 한마디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고

쉼없이 잔소리를 듣고, 눈물 쏙빠질 모욕을 받아도

자라마냥 목움츠리고 '죄송합니다.'만 연발해야 된단 말이야?

난 저 정도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하면서.. 어땠는지 떠올려본다.

그래. 나도 그랬군ㅡㅡ;

초특급박봉(지금도 박봉이지만 ㅜㅜ)을 받고도 막내라며 궂은일 도맡았고,

상사 눈치도 봐야했고, 여자선배들의 뒷담화도 열심히 들어줘야 했고,  

비상시국엔 월급을 까이기도 했고..

 어떤 화살이 언제 내게 쏠릴지 몰라 쥐며느리처럼 바닥에 붙어 살던 기억이 난다.

물론 삼년 버티고 뛰쳐나왔다. 그땐 거기나오면 딱 죽을 자리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규모 작고 조금은 인간적인 곳으로 옮겼다.

 

이 책..꽤 흥미진진하다. 

스포츠신문사 연예부 신입 기자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실감난다.

팩트같은 소설내용에 깜짝 놀라 작가소개 부분을 확인했다.

역시나... 자신이 연예부 기자시절 경험했던 실제 사연들을 모티브삼았다고 한다.

소설속 주인공이 취재하는 대형 스타들 이야기, 아이돌과 기획사간의 불화,

엄친아 스타와 청순도도이미지 여배우와의 스캔들,

온라인기사 조회수 늘리기위한 어처구니 없는 기사쓰기 행태

'소설이고, 허구다...'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이런 사연과 비슷한 스타가 있었는데...'하며 몇개의 이니셜과 스타이름이 머리속을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갑자기 연예종합지와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대한 호기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ㅋㅋ 

물론 보통 직장인이라면 공감할만한 산전수전 공중전 에피소드들도 가득이다.

 신문사 부장과 국장간의 너죽고 나살자식의 대립과

그 사이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눈치만 보는 기자들 이야기.

여기자의 결혼 소식에 축하는커녕 유부녀되면 칼퇴근 요구한다며 언짢아하는 상사 이야기.

동료 뒤통수 치고 상사귀염받는 찝찝한 이야기.. 등등

 

 

읽으면서 실없이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

메모해놓은 '해야 할 일' 생각하며 짜증났었는데 꿀꿀한 기분이 싹 가셨더랬다.

작가되려면 유머감각도 기본 지녀야 하나보다.

요즘은 한살 더 먹었다고 센스는 멍해지고, 유머감각은 냉동된지 한참이다.

그런데 이거 읽고 업그레이드 받은 것 같다.

겉만보고는 유치하지 않을까 나도 서른 넘었는데 퀄리티 생각해야 않겠나

나름 까칠한 이유를 대며 읽기를 차일피일 미뤘는데 이게 한번 잡고보니 빨대가 따로 없다.

물론 소재만으로 이렇게 생생하고 재밌을 순 없을테고 작가의 귀염성있는 글재주가 한몫했다본다.

쉽고 간결하면서도 적재적소에 특히 여성 직장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표현들이 돋보였다.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에피소드들과

주인공의 행동묘사와 직간접적 심리묘사도 재밌었던 것 같다. 

명랑드라마 코믹영화들 볼때 웃긴 장면은 타이밍이나 대화놓치면

남들 웃는거 어리버리하게 쳐다봐야 하지 않나

뭐..난 심한 사오정이라 왜 웃는거냐고 붙잡고 물을때도 많아 퉁 많이 맞았다.

그런데 이건 귀를 쫑긋거려야 할 부담없이도

곤란한 사건들 절묘한 표현들을 음미하듯 곱씹어가며 배꼽잡을 수 있어 좋다.

보다말고 몇번이나 작가이름을 확인했다. 

이런 엉뚱한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소울메이트하자고 졸졸 따라다니고 싶다.

안그래도 세상살이가 심심하고 울적해서 때이른 봄타나보다 했는데 많이 웃어서 한결 낫다.

이게..뭐 겪는 사람은 화나고 슬프겠지만, 읽고있는 나는 묘하게 동질감도 생기고, 우왕좌왕하는 인턴들 모습도 귀엽다.

우리도 다들 어리버리한 신입일 때가 있었잖나.

뭐 사실 지금도 전투중이며, 나이진 게 있다면 총알 장전되고 베짱 조금 생겼다는 거 말곤 없지만..

텃새부리고 눈치주는 선배들 등쌀 견디고 올라온 자들의 초라한 여유쯤으로 해두지 뭐..

 

 

하지만 이 책 보면서 내심 남편이 걱정스러웠다.

중소기업 직장생활 5년차. 대리 직함달고 아직도 신입처럼 이리뛰고 저리뛰고 한다.

요즘 사회생활이 이병이나 병장이나 진흙탕 구르기는 마찬가진가 보다.

요즘 대기업'S'계열사와 계약을 성사시켜 목숨걸고 하는 일이 있는데..이거 잘 안되면 짤릴 거 각오하고 있단다.

신입때는 위로 까마득해서 납작 엎드렸는데, 5년차되니 위 아래로 더 납작 눌러주시나보다.

일요일에도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남편이 안쓰럽다.

 경제가 시원찮네~하는 뉴스만 들으면 가슴이 쓰리다.

그런 뉴스만 나오면 남편의 회사 관리급들은 죽는소리 앓는소리 해가며

보너스 몇푼이라도 줄일 궁리나 하니 말이다..

물가 대폭 인상된다~뉴스 들을 땐 TV 집어던지고 싶다.

월급은 쥐꼬리만큼 오르는데,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오른 월급과 오른 물가가 다이다이라도 되야 살지 않겠나.

정말..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다.

대통령 욕이라도 실컷해야 속이 풀린다. 내 덕에 만수무강하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