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미끈거리는 슬픔
류경희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택배상자와 함께 쌀쌀한 공기가 훅 끼쳤다.

정말 차고 미끈거리는 책 한권이 들어있었다.

제목이 마음에 든다.

차고 미끈거리는 슬픔

깊고 푸른 심해에 도도한 물고기 한 마리가 유영하는 그림을 상상해본다.

혼자이기에 도도할 필요없는 물고기는 주위를 둘러보곤 조금 쓸쓸할테지.

사방이 뚫려 있지만 

 사방이 막힌 깊푸른 공간일 수도.. 그래서 답답할 수도..

마치 우리처럼 말이다.

 

중심인물 모두 각자의 어항을 가진 물고기들처럼

각자의 메모리박스를 갖게 된다.

누군가 그 여섯 명을  메모리박스라는 사이트에 초대하고,

 그들의 기억을 기록하고 저장하며 소통케 할  메모리박스를 건네준다. 

각자에게 고양이줄고기, 유리고기, 나비가오리, 등목어, 모래무지, 벚꽃뱅어라는

아이디를 부여하고, 그들은 그들의 기억과 일상을 이곳에 털어놓기 시작한다.

 

윗층여자와 남편을 나누게 된 지선 (ㅡㅡ; 아우 싫어)

토스트를 캠핑카로 바꾸려고 애쓰는 수

챗바퀴돌듯 빡빡한 일과를 견디는 미진

질결여증으로 정말 결여된 처녀성이 억울한 인주..

그들은 소중한 이와 단절되어 뿌리깊은 상실감을 맛보거나

그들 자신과도 단절되는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차고 미끈거리는 기억의 편린들을 조심스레 풀어내고,

 서서히 소통이 주는 해방감을 느끼는 그들..

 

 

난 내가 그 소설속에 쑤욱 들어가버린 느낌이다.

왜..가끔 거울을 보다가

거울속으로 미끄덩 들어가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 때 처럼 말이다.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듯 보이는 내 일상도 그들처럼 삐그덕거린다.

 

있는 데 없다....

각자의 어항속에서 그윽한 유영을 즐기다가 문득 두리번거리면

항상 내 곁에 있다고 여기던 그들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들은 저편 너머 다른 어항속에서 나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는거다.

나는 차가운 어항 유리에 머리를 부딪히며 큰소리로 그들을 불러보지만 

그들 역시 나처럼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된 단절이다. ㅡㅡ;

어항 유리를 통해 본 가족의 모습이 전부라고 여기며 거짓 소통을 해왔다.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지만 모른 척 하고 살았는데..

이넘의 책이 그 걸 폭로해버렸다.

잠시 생각했다. 나와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그들을..

왜 우리는 깊숙히 묶이려는 노력을 포기해 버렸을까.

이젠 그 포기를 포기해야겠다. ^^

 

단절을 소통으로 바꾸는 방법은 아직 모르지만

책도 그리 속시원히 제시한 건 아니지만

천천히 찾아 볼 계획이다.

혹시 모른다.

소통을 막아온 유리벽이 착시였을 수도..

사실은 사방이 트인 깊푸른 심해였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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