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세대를 위한 유교철학 에세이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유학도서
성균관대학교 유학주임교수실 엮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의 도리는 가축의 도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며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동물임에 틀림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인간과 동물의 확연한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무례하고 배은망덕한 사람을 지탄할 때 동물을 빗대어 말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타인과의 언쟁 와중에 자신이 개나 소 취급을 받을 때 분노가 머리 끝 까지 치밀어 오름을 느껴보았다면 이것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일까? 만약 유교적인 가치관에 근거하여 대답한다면 예의와 염치를 아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흔히들 예의를 차린다고 하면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의식을 행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예의 근본의미를 안다면 그 당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항상 맞부딪치는 것이지만 진지하게 되돌아볼 기회는 없었던 것. 유교의 참신한 해석과 우리가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 본 책이 ‘N세대를 위한 유교철학 에세이’이다.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매우 혼란하며 추악한 인간 군상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암담한 세상이었다고 한다. 친남매들이 근친상간을 범하거나 권력을 위해 아비를 죽이며, 포악한 도적이 그 잔혹함으로 명성을 얻어 도척이라는 자는 사람의 간을 날로 회쳐먹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세상이 혼란하다고 하지만 결코 그때 당시보다 더하진 못할 것이다. 법에 근거하여 나라가 다스려지는 지금에서도 패륜적이고 간악한 범죄가 벌어지면 인간 본성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람은 원래 저렇게 교활한 동물이야’하면서. 그러한 사람들이 춘추 전국의 혼란상을 직접 보게 된다면 어떠할까. 결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혼란의 한 가운데서도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임을 굳게 믿고서 약간의 수정(?)만 가능하다면 다시 선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공자가 평생에 걸쳐 주장한 내용이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에는 참신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추악함은 이미 매양 보아왔던 것이고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여기던 시대였다. 또한 백성이란 전쟁에 필요한 군사이며 물자를 생산하는 도구로밖에 인식되지 않던 때였다. 그런 와중에 부형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생활을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군주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더군다나 전쟁을 일으켜 국가의 이익을 도모해야 하는 시대에.

 


시대상황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았을 때 공자를 비롯한 유가 사상가들의 주장은 참으로 허무맹랑하게 들렸을 것이다. 당장 진나라와 같은 변방의 나라는 상앙을 위시한 법가의 정책을 받아들여 초강국으로 변모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이룩하기도 했으므로. 그러나 상앙마저도 결국엔 자신이 실행한 몰 인간적인 법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자승자박이다. 후에 법가를 받아들였던 진나라는 금세 사라져 버렸지만 한나라를 시초로 중국 역대 왕조들이 계속해서 유교를 받아들였음을 본다면 유학은 매우 성공적인 가치관이었음이 자연히 입증된다. 그렇다면 유교의 핵심적인 가치관인 예와 인은 무엇일까?


 

예와 인에 대한 설명은 이 책에서 여러 장에 걸쳐 등장한다. 먼저, 예의 근본정신을 아주 핵심적으로 함축한 말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장에서 나온다. 대표적인 허례허식으로 일컫는 제사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죽은 부모에 대해서도 그렇게 극진하게 섬길 것이면 살아있는 부모야 오죽하겠는가.”하는 이면의 의미가 담겨있다.― p38」즉, 제사는 귀신을 섬기기 위해 지내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선조를 극진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아계신 부모님들을 봉양하는 마음을 살피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계기가 허례허식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다. 책에서는 맹자의 충격적인 한 구절을 소개한다. 좋은 음식과 따뜻한 옷으로 부모를 잘 모신다고 한다면 그것은 개와 말을 잘 키운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구절이다.  

그래서 예의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논어에는 예의 정신을 생각해 보게끔 하는 대목이 있다. 희생양을 바치는 예에 대해 제자인 자공이 아까워하자 공자는 ‘나는 그 예를 아낀다’라고 말한다.(『논어(論語)』-「팔일(八佾))」 공자 시대에 이르러 유명무실해지긴 했지만 원래는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제사였다고 한다. 공자의 말은 정신은 없어졌더라도 양을 바치는 예라도 남아 있으면 후손들이 그 양을 보고서라도 본래 정신을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뜻이다. 『예는 개인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틀이다 』는 장에서는 서양의 예절을 고상한 것으로 여기고 조상들의 예절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데 만약 서양의 악수는 칼을 찬 상대방들의 공격의사가 없음을 확인하는 예절이고 ‘Lady First’는 위험한 곳에 여자를 먼저 들여보내 위험을 확인하려는 남성들의 가증스런 관습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보다 근본적인 정신에 입각한 형식이었던 조상들의 예절에서 극진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맹자의 첫 장인 양혜왕 편에서 왕이 맹자를 모셔다가 ‘선생께서 먼 길을 마다않고 오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어떤 이로움이 있겠습니까?’하고 말한 구절을 두고 사마천은 무릎을 치며 탄식했다고 한다. 맹자가 뒤이어 말하듯 위에서부터 이익을 취할 것 같으면 아래까지도 모두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혈안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이(利)’가 아니라 ‘의(義)와 인(仁)’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함을 말한다. 사실 위에서도 말했듯 백성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당시 사회에서 백성에게 ‘인’을 베푼다는 생각은 요원한 사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으로부터 미루어 나가는 것(恕)’을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삼았고 이것이야말로 공자의 하나로 관철된 도리의 실상(충서)이라고 증자가 말한 것이다.


 

‘인(仁)은 동이족의 마음’이라고 이기동 교수는 말한 적 있다. 군자불사지국이며 공자가 군자의 나라로 동경하여 가서 살고 싶어 했던 동이족 백성들의 마음이 바로 인(仁)이라는 것이다. (이(夷)라는 단어를 풀이해보면 인이라는 글자가 들어있음을 발견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의 것으로부터 짐작하여 생각해 나간다면 인이라는 마음은 사람을 소중히 하고 인간 뿐 아니라 자연과 동물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다(까치밥과 고수레에서 보듯이) 이 책의 『인은 사랑이다』라는 장에서는 인의 기본 정신을 생명에 대한 사랑이며 ‘낳고 살리길 좋아하는 미덕-p66’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이웃이나 동식물 자연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영양분을 짜낼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들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환경은 풍요로워질 것이고 모든 인간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맹자는 인(仁)한 마음에 근거하여 고기 잡는 촘촘한 그물을 쓰는 것과 마구잡이로 벌목하는 것조차 언급하고 칠십 노인이 따뜻한 옷을 입고 백성이 굶주리지 않으면 도(道)가 이루어져 누구나 왕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오륜의 현대적 해석』에서는 인의 기본 정신에 입각해서 수평적인 가족관계와 평등한 민주사회에서 오륜을 여전히 중점적인 가치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모색한다. 무엇보다도 고루한 생각에 근거하지 않고 과감히 취사선택하는 합리성을 보이면서 본래의 정신과는 다르게 왜곡된 윤리인 ‘삼강(三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綱)’ 즉, ‘벼리’라는 말에서 수직적이고 왜곡된 인간관계가 연상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타당성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과거의 것에만 연연하지 않고 현대적이고 개방적인 관점에서 유교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수 연구자들의 에세이 형식으로 엮어져 전체적인 일관성이 저하된다거나 동일한 구절에 대해 반복적으로 해석하고 그에 담긴 뜻을 취사선택하여 ‘견강부회’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점은 다소 유감이다. 그리고 ‘에세이’라고 보기엔 별로 말랑말랑하지 않고 건조한 문체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반면에 『주역 읽기』는 사주팔자 보는 책으로 생각하기 쉬운 주역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난해한 기호들의 나열이 아니라 그 속에 인문학적 사상들이 담겨 있음을 알려주어 매우 신선했다. 고전읽기에 도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인 ‘친숙하지 않은 문체’나 ‘싱거움’을 외면하지 않고 연구자가 똑같이 고민하던 때를 생각하며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첫 구절은 정말 인상 깊은 것이다. 아울러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의 관조적이고 시적인 문체도 멋지다. ‘삶은, 꽃을 시샘하는 봄바람 한 자락에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오얏꽃, 복숭아꽃처럼 스러지는 덧없는 것’

‘구룩구룩 물수리는 강가 섬에 있네 아름다운 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라는 시경의 구절을 음미하며 ‘즐겁지만 지나치지 않고 슬프지만 상하게 하지 않는다.『논어(論語)』-「팔일(八佾)」’라며 즐거워한 공자의 깨끗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유학의 인문주의를 이 책을 통해 재발견하게 된 좋은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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