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양산
마쓰다 마사타카 지음, 송선호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위대한 인물의 죽음은 지축을 흔들고 창공을 어둡게 한다. 그리고 기이를 일으킨다. 신이 죽고 난 후 태양이 구름에 가리우고 땅이 흔들려 성소 휘장이 양쪽으로 찢긴 것 처럼. 하다못해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의 죽음은 주변인들에게 어떠한 예감을 느끼게 한다.

죽음은 예술의 주요한 모티브였다. 죽음을 그리고, 죽음을 쓰고, 죽음을 연주해 온 인간들. 그 속에서 죽음은 항상 극적이고 무언가 큰 전환을 만들어내는 계기였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에 대해 너무나 호들갑을 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일상에서 맞부닥치는 죽음은 어떤가. 그것은 지인들의 슬픔 외엔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한다. 그 죽음으로 어떤 이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겪고있다 하더라도 그 날의 해는 떴다가 지고,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부단히 운행할 뿐이다.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보이는 니힐리즘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이 책 '바다와 양산'은 그런 일상적인 죽음을 그리려 한 작품이다. 시한부 인생 부인과 그 남편의 아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우리는 실제와 가장 비슷한 죽음의 모습,그리고 평범한 삶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은 희곡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모든 사건은 인물의 대사와 지문 그리고 간단한 해설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것 마저도 상당히 제한적이고 절제되어 있어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작품의 얼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 독자들은 어떤 극적인 갈등과 극복을 느끼길 기대하며 행간을 읽어 내려가지만 정작 발견해내는 것은 나오코의 죽음과 무덤덤하게 밥을 떠 넣는 남편의 모습 뿐이다. '죄와 벌'에서 그려진 수 많은 사상의 다툼과 주인공의 내면과 대치하는 외력들도 보이지 않고, 햄릿처럼 극적이고 유장한 분위기의 약간 조차 느끼지 못한 채. 시원한 청량음료를 기대하며 마셨지만 병 안에 들어있던 것은 시원한 생수였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듯 작품은 그렇게 끝을 낸다.

무척 어렵고 복잡한 소설을 읽고 난 후, 그리고 선문답을 듣고 난 후 곰곰 생각해 보기 위해 다시금 떠들어 보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서는 책장을 다시 펼치지 않았다. 책을 다시 읽어 작가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알고 싶은게 아니라 내 영혼이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모습이었다. 문득 나오코의 조용하고, 극의 비중에 비해 너무도 허무하게까지 느껴지는 죽음을 오랫동안 헤아려 보고 난 후에 느낀 것은. 일상은 똑같은 터미널을 반복적으로 드나드는 여행의 반복일 뿐이다. 목적지도 같고 귀환할 곳도 같지만 언젠가는 끝이 날 여행. 놀라운 생명의 경이 조차도 일상의 반복성에 색이 바래고 만다. 내가 큰 기대를 가지고 드디어 도착한 어느 곳은 그곳에서 기념품을 파는 상인에겐 지루한 일상의 공간일 뿐인 것 처럼. 결국 어느 사람의 곁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죽음과 탄생도 반복되는 일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 죽음에 가까울 수록 우리는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바라보지만 종래엔 자신의 목적지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부인의 죽음을 앞둔 요지에게 동네 운동회 참가를 권유하는 다케후미 부부, 출판부 일을 위해 그에게 원고를 받으러 오는 요시오카 처럼.

그렇다고 누구도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할 순 없다. 소설 등신불에서 산 채로 몸을 공양해 숯덩이가 된 육체 앞에 들어보이는 상처 난 손가락이 얄밉긴 하지만 누구도 지탄(指彈)할 순 없듯 말이다.

바다와 양산을 읽으며 발견하는 것은 그대로 재현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일 뿐.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양적인 여백의 미는 주인공 부부의 대화 사이의 적막이 아니라 외려 존재의 기로에 선 주인공 주변인물들의 무채색의 일상일 것이다. 누구도 그 감동을 설명해 줄 순 없다. 세상엔 무수한 인간들이 살고 그 인간들은 나와 별 다를 것 없는 삶을 계속하고 있다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한 감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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