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 이 시대 2인 가족의 명랑한 풍속화
박산호 지음 / 지와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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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아이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고, 어디서부터가 내 분노와 속상한 감정의 표출일까. 어디서부터가 관뚜껑에 못질할 때까지 그치지 않을 부모의 잔소리인가, 어디까지가 아이를 지키기위한 올바른 조언인가.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생각보다 잘 살고있어> 본문 p.94-95

디자인 일을 하다보면 무의식중에 깔려있는 '선입견'으로 표현할때가 있는걸 최대한 피해보려고 노력해본다. 가령 등장하는 일러스트의 성비율을 맞춘다던가 분홍색, 파랑색으로 성구분 하기(특히 어린이나 청소년관련에서는 피하려한다), 머리카락길이, 기본적 남자캐릭터에 리본과 눈썹만 붙은 여성캐릭터들이 그렇다. 그럼에도 몇 가지 놓치는것들이 있는데 하나는 교복치마를 입은 중,고등학생이고, 엄마, 아빠, 아이로 이뤄진 가족구성원이다. 클라이언트들은 그런 나에게 '저도 그렇게 배우고 성장한 세대이지만 요즘엔 여학생들이 교복바지도 입고, 한부모나 조부모가정도 표현해야해서'라고 조심히 이야기하며 어째서인지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이야기할때가 있는데 사실 그런 이야기 들을때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일때도 있어 약간 한대 맞은 기분이긴하다. 머리속에서는 그런 가정이나 선택지가 있는걸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그런 것들이 '평균적'이라고 생각하고있는것이다. 그러고보면 요즘엔 정말 다양한 가족형태가 들어나고있다. 아직은 정서상 못받아 드리는 가정형태도 있긴 하다만 여전히 구시대적인 생각으로 '외동은...' '여자 혼자는...' '남자 혼자는...' 이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냥 요즘엔 내 생각은 그렇다. 좋은 부모란, 꼭 엄마와 아빠가 있는 가정에서만 태어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보다 잘살고 있어> 역시 이런 나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책이다. 아이가 외동이든, 첫째든, 막내든, 형제가 많든 적든, 그냥 그 사람 개인이 가진 선천적 기질과 길러주는 부모-때론 키워주는 친인척-와의 유대감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짓는다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린 아직도 남들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냉정한 모습을 보일때가 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남들처럼 살지는 않습니다만 충분합니다' 라는 문구는 본격적으로 책을 펼쳐보기전 '생각보다 잘 살고있는' 그들의 삶을 총칭하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혼자서 딸을 키우는 엄마의 시선으로 명확한 시간적 서술은 없지만 '릴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딸이 대략 중,고등학생부터 20살로 대학 입학할때까지의 기간동안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책이다. 사실 책에서 계속 '릴리'라는 이름이 나와서 '산호'라는 이름도 가명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본명이셨다. 책에서도 나오듯 남자로 착각할만한 이름이기도해서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책을 좀 읽어보면 알게되었다.

허나 릴리가 나의 새롭고 더 나은 버전이 아니듯, 릴리의 인생 역시 내 인생의 새롭고 더 나은 버전이 될수 없다. 릴리에겐 릴리만의 인생이 있다.

<생각보다 잘 살고있어> 본문 p.33

올 한 해로 네 인생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건 네 인생에서 프롤로그의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줬어야했는데, 대학에 합격해야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게 아니라 이렇게 냉정하게 흐르는 시간도 소중한 인생의 일부임을 알려줬어야했는데.

<생각보다 잘 살고있어> 본문 p.171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인데 속을 하나도 모르겠다. 라는 어떤 부모님의 한탄섞인 이야기를 들은적 있다. 저자도 이런 생각을 가진듯 딸과 의견 충돌이 있거나 생각을 해서 낸 조언으로 순간 울컥하는 릴리의 모습을 보자면, 솔직히 우리집과의 모습과 별반 다를게없다. 나야 3자 입장에서 그렇구나 하면서 넘길수 있는 내용도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어서 들으면 울컥하기도 서운하기도하는데 그런 과정들을 이 2인 가족은 더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자식에게 자신이 가진 기대감과 희망감을 최대한 드러내지않고 한명의 인간으로서 딸을 대하려는 저자의 태도가 너무 멋있었다. 또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진 엄마를 따라 어릴때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마침내 해외대학교를 다니게 된 릴리가 부럽기도 하였는데 결국엔 그 성장배경에 있는 저자의 노력이 많이 담겨져 있어서 이 책을 읽게될 릴리의 생각은 어떨지 괜히 궁금해진다. 2인 가족이라하지만 여전히 저자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릴리의 아빠와는 관계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실 이렇게 이혼가정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들어본적이 없기때문에 좀 생각이 많아지기도했다.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고 그저 서로의 안부만 종종 묻는, 너무 잘살아도 짜증나겠지만 그래도 마음의 짐이 되지 않을정도만 잘 살았으면 좋겠는, 그 마음을 이해가 가는듯 어렵기만하다. 딸이나 아들같이 자식은 내가 보호해야할 존재일거같지만 아이의 모습을 보며-심지어 아주 어릴지라도- 부모인 자신도 힘을 내서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 다는것은 자식 이길 부모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만국공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공감도 되고 우리집도 딸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슴속에 박히는 문장들도 많고 우리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났었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말은 나 역시도 종종 한적 있지만 예전에 했던 의미와 지금 말하는 의미는 완전 다르다. 가족들을 위해 온날을 받쳐 자신의 삶없이 살아온 이 시대 부모님들에 대한 존경의 박수를 건내며, 우리는 내일도 생각보다 잘 살아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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