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공자의 가르침중에 가장 기본이며, 이 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평생 공부를 해도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책에는 1편 배움, 2편 리더, 3편 예법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오늘은 전체를 아우르는 말은 결구 배우고, 익혀, 실천하라는 1편이 가장 근본이 아닐까 한다.
공자가 말하길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
논어의 제 1편 제목은 '학이'學而 이다. 공자의 후세들은 <논어>를 총 20편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첫 문장에 나오는 단어를 제목으로 삼아 20개의 소제목을 달았다. 첫 문장은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 번쯤은 들어본적이 있는 익숙한 문장이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문장에서 '아니한가?'하고 번역된 불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자는 간단히 설파하면 될 말을 왜 독자들에게 물어보듯 말했을까? 우선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배우고 제때 익히는 일이 즐거운가?' 대답은 아니다. 배우는 것, 즉 공부가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공자도 대부분의 사람이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건 같다. 그래서 그는 '이또한 즐거운일이 아니겠는가?'라고 역설적으로 독자들에게 되물으며 배움의 세계로 반갑게 초대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책을 매일 읽어도 왜 내 삶은 좋아지지 않는 걸까? 이유는 분명히 있다.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기' 때문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명확하게 분별하며, 성실이 실천해야 한다. "
평상시 우리가 마주하는 배움에 대한 어려움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아예 배우려하지 않는 경우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공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논어>는 주로 스승인 공자와 제자들이 대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배우고 있거나 배우겠다는 마음을 가진 제자들과 토론하면서 배우지 않는 경우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두번째 상황은 배우기만 하고 응용과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것을 만들지 않은 경우이다. 배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일 경우, 배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배움이 삶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쉽고 빠른 지름길로 가고 싶은 초조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정독하는 대신 오디오 북으로 흘려듣고, 한가지 지식을 배운 것으로 삶의 변화가 즉시 일어나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