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다독이는 관계 심리학 - 나르시시즘과 외로움
우즈훙 지음, 박나영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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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인생은 나르시시즘에서 출발할지 모른다. 우리가 어린아이일 때,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자만감이 없다면 이 거대하고 두려운 세상에 어떻게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후로는 끊임없이 나르시시즘을 깨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 있는 진정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과정 속에서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을 길러야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든 책이었는 나한테는 꽤 많은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자발적 외톨이인 나는 나만의 나르시시즘의 섬에서 머리로만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안의 나와 터놓고 대화하기 ; 나르시시즘과 외로움

나르시시즘은 경쟁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힘이다. 사회에서 상대적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부족한 능력이나 허점의 구멍이 커 보이는데 이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자신을 아낌없이 보듬고 보호하기 위해 푹 빠지는 나르시시즘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자존감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나르시시즘이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나르시시즘이 강해지며서 부정적인 감정이 양산된다. 이로 인해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단절과 고립된 상황을 부른다. 반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까지 인정하는 나르시시즘은 실행력과 적극성을 부여해 주위의 인정과 사랑을 끌어내기도 한다. 위기를 극복하고 절망을 이겨내는 유용함도 나르시시즘에서 나온다. 나르시시즘에는 마력이 있다.

 

 

성인의 전능한 나르시시즘은 두 가지 특징을 띤다.

첫째,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므로 너는 당연히 나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

둘째, 나는 모든 것이 완벽하니 너의 모든 요구를 알아낼 수 있다. 영혼이 외딴섬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전능한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다. 그들은 뭍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다른 영혼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니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전능한 나르시시즘은 고독하다. 외딴섬에서 나와 다른 영혼의 존재를 느끼며서 전능한 나르시시즘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들과 충만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성과 감성을 공유하고 자신을 드러내 이해받는다면 원시적인 자기애는 점차 현실감 있는 건강한 자기애로 변한다.

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의 주변 사람들은 매사에 그에게 양보해야 한다. 사사건건 따지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은 일을 저지르고 참는 사람이 뒤 수습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매사에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긴다. 반면 심리적으로 억눌려 있는 사람은 단 한 가지 실수를 해도 반성하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자아도취형은 계속해서 자아도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억눌린 사람은 계속해서 억눌려 있게 된다. 그 결과 관계의 차원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갈등이 터진다.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에는 일리가 있다. 모두 자기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기에 자기주장의 근거가 있고 이치에 맞으며 타당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양쪽 모두 편하게 존재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두 마음 간 여백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누구든지 함부로 관계를 파괴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적인 양보나 자아도취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쪽이든 부담스럽게 지나친 행위는 좋지 않다.

 

 

자기만의 경계를 확보하라

가정의 분위기는 사랑, 만족, 행복, 증오, 부족, 고통, 경쟁 등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으로 섞여있다. 이런 여러 감정들이 잘 정리되고 가족관계의 경계를 지키면서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이 사랑으로 승화된다. 어떤 부모는 자녀와 시공간적으론 공생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과하게 끈끈한 관계를 자녀의 생명력을 소모시킨다. 시간적 공생관계를 요구하는 부모는 자녀가 결혼한 후에도 하루에 몇 통씩 전화를 한다. 공간적 공생관계를 원하는 부모는 독립한 자녀에게 함께 살기를 요구하거나 수시로 얼굴을 봐야 한다. 공생 심리에 고착된 사람은 누군가 항상 자신을 지켜봐 주길 간절히 바란다. 틈이 없는 관계를 친밀함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공생관계는 서로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으로 상대의 기대에 맞춰줘야 한다. 그로 인해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는 않는다. 독립적 공간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가 차단되는 장소이다. 자신의 상상력과 이기심, 욕망, 배신, 폭력을 포함한 인간성이 수용되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공간이 없으면 진정한 '나'를 살피기 어렵다. 친밀함이 독립적인 사람들 간의 융합이라면 공생은 양자의 차이를 소멸시켜 하나의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생은 네가 나의 일부이므로 이념이나 관점, 생각까지 가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 어떤 차이나 경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경계나 차이는 필수로 동반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 경계가 서로의 존중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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