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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 -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정신과 의사의 생존 가이드
조애나 치크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6년 8월
평점 :
세상은 시끄럽고 빠르게 변한다. 가끔은 그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힘들고, 나만 지쳐 있고,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기분에 빠질 때도 있다. 끊이지 않는 뉴스에 고통받는 것도, 나를 둘러싼 부조리와 불합리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도 나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결국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게 된다. 내가 유난스러운 건 아닐까, 내가 조금 더 강해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파묻혀 있을 때 『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을 만났다.
이 책은 우리가 겪는 정신적 고통이 반드시 개인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망가진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과 우울, 분노와 슬픔은 위험을 감지하고 울리는 빨간불일 수 있다. 불평등과 차별, 끊임없는 경쟁,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면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이 과연 더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래서 저자는 정신 건강을 개인의 영역에만 가두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에서 출발해 나와 타인의 관계를 살피고, 더 나아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의 구조까지 바라본다. 개인의 병리학적 증상을 알아내고 약으로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렇게 병든 사회가 계속되면 병든 사람은 계속 늘어난다. 이런 시선은 정신적인 괴로움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병리적인 증상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책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에서는 감정이 왜 발생하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역사적 환경이 몸과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살펴본다. 중반 이후에는 자기 연민과 감정 조절, 생각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법처럼 당장 자신의 삶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다시 타인과의 관계와 공동체의 회복으로 시야를 넓힌다.
그중 2장과 마지막 10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타인과 연결되고 공동체와 함께 치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솔직히 크게 와닿지 않았다. 타인을 돌보기는커녕 나 자신을 돌볼 힘조차 부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것도 모두 피곤하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을 반드시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그때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는 것도 이 책을 활용하는 하나의 방법처럼 느껴졌다.
나에게는 특히 7장 ‘머릿속에서 빠져나오는 법’이 그랬다. 여러 번 다시 펼쳐 읽은 장이기도 하다. 나는 감정을 밖으로 쉽게 표출하는 편이 아니다. 불편한 일이 생기면 말하거나 행동하기보다 계속 머릿속에서 되짚으며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지나간 일도 반복해서 떠올리고, 생각은 흘러가지 못한 채 한곳에 고인다.
이 장을 읽으면서 생각에 계속 매달리는 것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아니라는 사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살펴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곧바로 사실이라고 믿기보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방법도 필요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은 생각 속으로 밀어 넣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 부분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정신건강을 주로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증상을 발견하고 진단을 받은 뒤 적절한 치료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개인에게 필요한 치료와 도움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질문을 한 단계 더 확장한다. 계속해서 사람을 병들게 하는 사회에서 아픈 개인만을 치료하면 충분한가?
개인에서 시작해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의 회복까지 이야기하는 이 책의 주장을 모두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여전히 나 하나를 돌보기도 힘든 순간에는 ‘함께 치유해야 한다’는 말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괴로움이 오롯이 나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니며, 내가 살아가는 환경과 관계 역시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우울하거나 불안하고, 세상을 보며 화가 나는 감정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문제로만 여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그 감정이 내가 지금 무엇을 견디기 어려워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병든 사회가 계속된다면 아픈 사람도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렇기에 정신건강을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이 세상에 더 잘 적응하도록 만드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일과도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결국 이 책이 내게 남긴 것은 ‘어떻게 하면 덜 아플 수 있을까’라는 질문만은 아니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보고, 나 자신을 지키면서도 타인과 함께 조금 덜 아픈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했다.
아픈 사람에게 끊임없이 강해지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아프게 만든 세상은 괜찮은지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