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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없는 마음 - 양장
김지우 지음 / 푸른숲 / 2025년 6월
평점 :
이 책은 저자의 유럽과 호주 여행기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짐이 좀 많고 시선이 낮은 것이 특징인 이 여행기는 우리가 몰랐던 곳을 보게 하고 느끼게 한다.
책을 펼치기 전, 휠체어를 탄 저자라는 소개를 보고 ‘장애로 인한 해프닝’이나 ‘장애를 극복한 감동 서사’를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 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실패에 부딪히며, 이동에 제약이 있을 거라는 편견을 부수고 혼자 혹은 같이 바퀴를 굴리며 휙휙 앞으로 나아간다. 바퀴가 없는 곳에서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계단을 뛰어내리는 용감하고 거침없는 저자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보다 보면 누구나 응원을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 여행하고 싶은 건 덤.
생각해보면, 일상 속에서 장애인을 마주친 기억이 거의 없다.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에서조차 휠체어를 탄 사람을 보기 어려운 건 왜일까. 그들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회가 그들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고 싶어 하는 것은 비장애인이 아닐까. 그들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으로 구분 짓고 넘어오지 말라고 선을 그어 버린다. 설령 혼자 거리를 지나가고, 장을 보고, 생활 공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도 그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감탄했고, 감동했고, 그리고 분노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왜 한국은 하지 않는 걸까? 라는 생각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특히 저자가 ‘장애를 고난과 극복의 이야기로 소비되지 않게 하려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왜 장애인의 삶을 늘 극복서사로만 바라보는지 곱씹게 되었다. 왜 그들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해피엔딩으로 가기 전 잠깐의 고난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이런 편견 속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실패자가 되어 숨거나 위인이 될수 밖에 없다. 이런 시선으로 저자에게 어떤 서사가 요구되고 있지 않을까, 비장애인의 입맛대로 한 사람의 삶을 납작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행위를 매 순간 경험하고 있지 않을까?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죄책감 없이 손을 뻗고, 뻗어온 손을 기꺼이 맞잡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유럽과 호주에서 의심하지 않는 마음을 배웠듯, 나도 기꺼이 손을 뻗기도 하고 맞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동정하는 마음이 아니라 언젠가 받을 친절을 미리 저금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도움 요청 예술'이 매끄럽게 공연되려면 미리 연습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