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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평점 :
이 책은 SF 단편 소설집으로 작가님만의 색깔로 가득 찼다.
8개의 이야기의 배경은 다양하다. 로봇, 우주, 기계, 영생, 외계인과 같은 SF적인 요소가 가득 차 있다. 작가가 그린 세계는 기계적이고 차갑고 오로지 효율을 위해 움직인다. 인간적인 요소가 결여된 이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인간적이어서 더 극적으로 보인다. AI가 익숙해지고 인간보다 기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더 편리하고 더 빠르게 바뀌는 이 세상에서 언젠가 인간적인 것이 보편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너의 유토피아>보다 나는 <여행의 끝>이라는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았다. 지구에서 사람을 먹는 식인 전염병이 돌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TV나 드라마, 여느 매체에서 묘사되는 좀비와 달리 이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겉으로 봐서 티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떻게 전염되는지도 밝혀진 바 없다. 이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그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신체 부위를 먹어 치운다. 한 마을에서 시작된 이 전염병은 결국 전 세계를 뒤덮어 버리고, 보다 못한 국가는 아직 전염되지 않은 사람을 모으고 선발하여 우주선에 태워 지구 밖으로 보낸다. 화자인 나는 이 우주선에 태워진 사람 중 하나이다. 전염병의 치료 방법을 터득해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이 절반, 치료 방법을 터득할 수 없다는 사람이 절반인 이 우주선에 탄 사람들은 과연 전염병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이야기에 이끌린 이유는 이야기의 반전과 묘사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지만 쉽게 상상이 갔다. 인육을 마치 사과에서 열매 따 먹듯이 먹는 인간들은 기계보다 잔인하다.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책 전반적으로 어렵게 쓰인 것이 하나도 없다. 하고자 하는 말을 에둘러 여러 장치로 감추지 않는 작가님의 특성이 이 책에도 잘 담겨 있는 셈이다. 직접적이고 쉽게 그려지는 이야기에는 감정과 고군분투가 잘 느껴진다. 약하고 평범한 이들을 향한 작가님의 마음이 녹여 나 있기도 하다.
8편의 이야기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들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