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술가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렌 지음, 박정훈 옮김 / 안그라픽스 / 2021년 5월
평점 :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만 예술가가 되어라.
-메릴린 민터, 미술가
책을 받아들어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보이는 첫 문장. 내 두 눈이 문장을 인식하자마자 나는 5년 전 과거로 되돌아간다. 당시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하던 친구와 나는 펍에 앉아서 맥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있다. 비록 디자인을 전공하던 차였지만 창작활동을 할 때 만큼은 디지털 프로그램은 최소로 사용하고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창작활동을 지향했고,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친구는 내게 묻는다.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면 죽어버릴거야?"
그리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응, 물론이지."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예술만을 위해 살아가는 필사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친구의 단순하지만 날카로웠던 질문은 메릴린 민터의 언어로 부메랑처럼 돌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인장 가시처럼 5년 이후 현재 내 가슴을 뜨끔하게 만든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만큼, 그리고 예술가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하느냐는 질문에 지금의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수만가지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으며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내게 칼을 꽂아넣는 것같이 들려서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이런 게으른 나를 채찍질하는 예술가들의 끓어넘치는 아이디어와 반짝이는 예술관이 담겨져 있다. 일생을 예술에 바친 절박한 아티스트들이 말하는 예술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야한다. 예술이 무엇인지, 무엇이 예술을 만드는지, 당대 현대 예술가들이 생각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강력 추천한다. 또한 책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창작활동에 대한 투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덕분에 몇 달 동안 처박아두었던 그림도 완성했다.
책은 매우 가볍기 때문에 가방에 넣어도 충분할 무게이고, 분량도 적어 부담없이 언제든 읽을 수 있다. 책을 두 손으로 잡고 읽을때 기준으로 아래쪽 여백이 충분히 남아있어 글자들이 손에 가려지지 않아 편하다. 각 예술가들의 생애를 줄줄 나열하지 않고 주요 작품 몇 점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소개하고 설명하기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예술작품의 의미]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왔다.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작품세계를 통해 어떤 종류의 '깨달음'이나 '충격'을 줄 것인지, 정치적/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할 것인지 또는 그러기 위해 어떤 상징성과 장치를 교묘하게 숨겨놓을 것인지 그리고 이것들을 어떻게 나만의 언어로 정리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자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본래 상징과 의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노래 가사를 해석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데 급급하다. 그래서 내 그림들을 보는 사람들 역시 그러할 것이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현대 예술가 온 와라에 대한 레너드 코렌의 언어를 통해 어떠한 특별한 의미나 메세지를 부여하지 않고도 멋진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관객들은 아무런 설명조차 없는 작품들을 보며 자기 자신을 투영하여 자기 방식대로 소화하고 해석한다는 문장들을 읽으며 공감, 또 공감했다.
카드뉴스형식 서평은 제 블로그에 업로드 하였습니다.
https://blog.naver.com/kchhy1195/222466956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