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리는 아이돌 마자마좌 그룹 멤버인 마사키의 열성팬이다. 삶의 유일한 이유이자 희망이고 몸을 지탱하는 척추인 '최애' 마사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춘다. 방 한 켠을 다 차지할 정도로 최애를 모시는 제단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최애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자 대표 색인 파란색으로 방을 꾸미고, 씨디와 굿즈를 있는 대로 다 긁어모으고, 최애가 단숨에 콜라 라벨 아래까지 마시면 그렇게 따라마시고, 최애의 아카펠라 자장가를 듣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아 이어폰을 끼고 매일 잠을 자다가 귓구멍이 아파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열정적인 덕질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화자인 아카리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나만의 최애가 있는 수많은 덕후 중 한명으로서, 최애가 연기한 영화, 드라마, 티비 토크쇼, 예능 프로그램, 시상식, 다큐멘터리, 라디오 방송 등을 새벽까지 챙겨보고, SNS에서 같은 최애를 모시는 팬들과 함께 하루가 멀다하고 수다를 떨고, 휴대폰 용량이 부족해질 정도로 크기와 필터만 다르게 입힌 같은 사진과 영상 및 gif를 수집하고, 최애가 즐겨하는 악세사리나 향수 등을 같은 종류로 구입하고, 그것도 부족하다 여겨서 팬아트도 직접 그리고, 자체적으로 최애의 얼굴이 들어간 굿즈를 디자인하고 만든 적도 많다. 최애에 대한 사랑을 불태운 적이 많았으니 당연히 아카리의 심정이 500% 이해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처한 현실을 나몰라라하며 극단적으로 덕질하는 아카리의 모습이 썩 보기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어'라는 뻔하디 뻔한 상투적인 표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과연 아카리는 인간 본연의 마사키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지만, 연예인으로서 아이돌로서의 마사키는 마사키 본인보다도 더 빠삭하게 잘 알고 있다. 최애가 한 말들은 모두 노트에 적어 분류하고 정리한다. 그러나 아카리 본인의 삶은 폐인의 그것과 더 닮아있다. 아카리 본인도 모르는 새 피부도 뒤집히고 살이 엄청나게 빠져 건강도 최악이고, 최애가 아닌 것들에는 집중력도 없고, 방은 청소를 하지 않아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도 단 하나, 최애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서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팬 폭행 사건으로 최애의 평판과 인기가 서서히 무너져가듯, 이미 망가지기 시작한 아카리의 삶은 더더욱 최애를 좇아 급속도로 부서져내린다. 


어쩌면 작가인 우사미 린은 오로지 최애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설정을 가진 매니악 아카리를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지 않고 스크린 속 헛된 우상만을 좇아 현실을 내던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우화 한 편을 던져준건 아닐까? 그러니까 최애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 것은 좋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어느 날 갑자기 척추가 사라져버린다면 당연히 바닥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으니까.  

세상에는 친구나 연인이나 지인이나 가족 같은 관계가 가득하고, 서로 작용하며 매일 미세하게 움직인다. 항상 상호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균형이 무너진 일방적인 관계를 건강하지 않다고 한다. 희망도 없는데 계속 매달려봤자 무의미하다느니, 그런 친구를 뭐하러 계속 돌보느냐느니 한다.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데 멋대로 불쌍하다고 하니까 지겹다. 나는 최애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행복하고, 이것만으로 행복이 성립하니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 P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