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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개정판 ㅣ 현대 예술의 거장
피에르 아술린 지음, 정재곤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피에르 아술린 지음 / 정재곤 옮김 / 을유문화사
아직까지 을유 문화사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이 출판사의 번역이 참 좋다는 평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만큼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번역에 관해 많은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관련 학과 전공자도 아니다. 그러나 번역서들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어떤 출판사의 번역서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술술 읽혀 마치 원래부터 우리말로 쓴 것 같은 좋은 책이 있는가 하면, 15분째 같은 페이지를 읽고 또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안 좋은 번역서들이 있다. 이 책은 단연코 첫 번째-번역이 잘 된 예시-의 표본이다.
디자인과 예술을 배웠지만 부끄럽게도 사진에 관련해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좋아하는 사진가- 소피 칼, 다이앤 아버스 등-은 있지만 굵직한 사진가들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 사진가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나와는 다른 시선,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은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는 한층 더 깊이 있게 내게 다가왔다. 그에 대해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된 기분이다. 물론 저자가 책의 초반부에 밝힌 대로 전기를 쓸 때에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는 없다고 밝히며 '신비'의 여지를 남긴다.
이 세상 일치고 결정적 순간이 아닌 것이 없다. 가장 올바른 행동거지는 바로 이 순간을 알아채고 붙잡는 일이다. 만일 국가의 대사에서 이런 순간을 놓치게 된다면, 앞으로 다시 그런 순간을 붙잡거나 알아챌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본문 428p
카르티에 브레송은 스스로를 아마추어라고 평하고, 사진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여섯 범주로 구분해서 전개한다고 한다. 르포, 주제, 구도 등 책을 읽으며 그의 직업적 신념 역시 찾아 볼 수도 있다. 사진으로 유명한 그이지만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있어서 사진이 삶 자체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저 삶의 메타포일 따름이라고. 그는 몇 번이나 사진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본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예술은 언제나 카르티에 브레송 그의 세계이고 원동력이자 정열이었다. 순수한 시각주의자로서 시각으로 살고 시각으로부터 자양분을 취한다. 더없이 공감 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예술가'라는 호칭은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을 풍기는 것 같아 차라리 장인이라는 말이 좋다는 그의 사고도 참 마음에 들었다.
이번 책에서는 그의 사진 작품 8점이 책의 서두에 새로 삽입되어 그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나마 더 엿볼 수 있어 더욱 좋다. 물론 본문 중간중간에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삽입되어 카르티에 브레송의 생애랄지 일화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팬이거나 혹은 팬이 아니더라도 그의 생애와 사진에 대해 궁금하다면 꼭 읽어봐야 할 멋진 책.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대한 선망과 관심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