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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 아직 끝나지 않은 이론
브라이언 이노.베테 아드리안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미술사는 오랫동안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해석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브라이언 이노는 예술의 의미보다 예술이 인간과 사회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주목한다.
그는 예술을 사회를 직접 변화시키는 투쟁의 도구라기보다는, 허구와 상상을 통해 현실보다 안전한 공간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장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예술은 일종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수행하며, 우리가 극단적인 선택이나 파국으로 향하지 않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결국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는 예술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인지적 기술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예술의 어원인 그리스어 ‘테크네(techne)’ 역시 본래는 기술을 의미했다. 저자는 기능과 순수예술이 분리되기 이전의 관점으로 돌아가, 기능과 꾸밈 사이에 존재하는 비효율의 영역을 예술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드라이버의 끝부분이 본질적인 기능이라면 손잡이의 재질이나 색상, 형태와 같은 요소는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이 동사라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형용사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은 바로 그 형용사의 영역에 존재한다.
불안이 커지는 사회에서는 효율과 비효율에 대한 판단이 더욱 엄격해지면서 형용사적 삶은 쉽게 배제된다.
당장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삭감되는 예산이 문화예술과 복지 예산인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생각의 발화는 개인이지만, 그 생각을 만들어내고 지지하고 길러내는 것은 공동체다”(114p)라고 말한다.
비효율처럼 보이는 영역을 쉽게 제거하지 않고 함께 품어내는 공동체만이 기후위기나 거버넌스의 위기와 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예술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려 하기보다,
예술이 인간과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책은 얇은 양장본으로 두꺼운 내지, 많지 않은 글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고,
공동 저자인 베테 아드리안스의 감각적인 그래픽 역시 인상적이었다.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보다
왜 인간은 끊임없이 예술을 만들고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효율과 생산성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어쩌면 우리 삶을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