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안트예 라비크 슈트루벨(Antje Rávik Strubel)는 1974년 독일 포츠담에서 태어난 전후 세대로,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목도한 세대이다. 냉전 이념이 일상 속에 스며든 사회에서 성장하고, 통합의 순간을 체험한 그녀는 분단의 기억과 통일의 환상 사이에 놓인, 이른바 '경계 위의 세대'이다.
『푸른여자』는 겉으로는 '동유럽 여성의 젠더 폭력 피해 서사'를 다루지만, 그 내면에는 분단 이후 유럽 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불균형과 경계, 침묵의 구조가 짙게 배어 있다. 이는 저자가 체험한 동서독 분단 경험과도 연결 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까지 그녀의 고향 포츠담은 동독(DDR)에 속해 있었다. 동독 출신으로서 유럽 안에서도 주변부의 시선을 체험했던 슈트루벨은 체코 출신의 '아디나'라는 인물을 통해 서독 중심 문화권에서 느낀 거리감과 위계의식을 투사한다.
장벽은 무너졌지만, 저자의 내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문화적 경계가 남아 있다. 이러한 내면의 장벽은 작품 속에서 아디나가 국경을 넘는 서사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구조로 형상화된다. 다시말해, '하나의 독일' 속에서도 분단의 흔적을 자각하며 살아가는 세대의 정서를 반영한 결과이다.
("소녀를 독재로부터 건져 낼 수는 있지만 그 소녀 안에 있는 독재를 건져 내는 건 어렵지" p.213)
따라서 슈트루벨은 단순히 동유럽 여성의 현실을 그린 것이 아니라, 통합 이후에도 여전히 발화되지 못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상징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젠더, 지역, 언어, 계급이 교차하는 경계 위에서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침묵의 층위를 드러내는 서사적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작품 속 부분 서사로 등장하는 '푸른여자'는 서사의 일부로 존재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작품 전체를 비추는 상징적 화자이다.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푸른여자'의 목소리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이자 중심 서사 속 아디나의 이야기를 신화적, 초월적 차원에서 감싸 안는다. '푸른여자'는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존재로 아디나의 내면을 비추는 분신처럼, 때로는 침묵 당한 여성들의 집단적 기억의 의인화처럼 등장한다.
푸른여자의 푸른(Blaue)은 단순한 미적 수사를 넘어 상실과 침묵, 기억, 영혼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푸른색은 차갑지만 깊고, 고요하지만 강렬하다.
이는 곧 말할 수 없는 자의 내면에 울려 퍼지는 무음의 언어이자, 폭력 이후 남겨진 잔존 감정의 색이라고 볼 수 있다.
'푸른 여자'의 서사는 현실의 서사와 병치되며,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병렬적 구조는 단순한 이야기의 장식이 아닌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고통을 어떻게 서사화할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는 그 동안 관성처럼 다뤄왔던 기록된 역사, 선형적 역사관으로부터 벗어나 기록에 담기지 못한 분절적 역사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내재화 되어 있는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