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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경제학 (반양장)
누리엘 루비니 & 스티븐 미흠 지음, 허익준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 같은 시기에 누리엘 루비니나 폴 크루그먼의 관련기사를 신문이나 인터넷상에서 접하는 건 영 달가운 일은 아니다. 이 양반들은 입만 열면 뭐가 절단 난다든지 아직 멀었다던지 하는 둥의 이야기만 쏟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살 수는 없는 법. 비관론자라고 하지만 충분히 이유 있는 비관이며 어찌됐건 당분간 세상은 포스트 케인지언의 시대가 될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때 케인즈가 나타났다. 이후 1970년대 신자유주의가 불어 닥치며 케인즈는 저만치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40여 년 후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가 닥치자 케인즈가 돌아왔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40여 년을 주기로 위기가 반복되며 경제학의 주류 역시 바뀌어 왔다. 얼마 전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판을 싹 갈아엎고 이도 저도 아닌 새로운 경제학을 만들어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좌우지간에 시간이 흐른 후 전세계가 작금의 위기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잊을 무렵 규제를 끔직히도 싫어하는 신자유주의 비스무레한 것이 다시 나타날는지는 꼭 지켜봐야 될 대목이 아닌가 싶다.
하이먼 민스키에 이어 역시 케이지언이라고 일컬어지는 루비니는 책에서 좀 더 유연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즉슨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개입으로 시스템의 붕괴를 방지해야 함은 물론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주의자 특히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대로 철저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함과 동시에 슘페터의 ‘창조적파괴’를 일정부분 지지하고 있다. (사실 누리엘 루비니와 스테판 미흡이 공동저자로 되어 있어서 어느 것이 루비니의 의견인지는 알 길이 없기는 하다.)
책은 유럽의 재정위기가 막 불거지기 시작한 2009년 4분기나 2010년의 1분기 쯤에 마무리되어 나온 듯 하다. 지금은 더블딥 우려가 극도로 팽배해져 있는데 이 책은 좀 덜 비관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의 경제회복세를 U자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데 아마도 지금 시기에 탈고했더라면 주저 없이 W자를 쾅 하고 찍었을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책의 곳곳에 유럽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유럽연합의 붕괴 가능성에서 대해서도 주저 없이 예견하고 있다. 문제는 유로화의 테두리안에 들어오면서 국가경쟁력을 상실한 소위 PIGS국가들인데, 이들이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재정지출을 줄이면 과연 불황의 악순환에서 탈출해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97년도에 한국은 역시 부채의 문제이긴 했지만 민간부문의 부채였고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자율적인 통화정책이 당연히 가능했기 때문에 절하된 원화 환율을 바탕으로 수출을 통한 빠른 위기 탈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럽의 말썽쟁이들을 되돌아보자. 통화정책은 유로화에 묶여 있으며 부채를 지고 있는 쪽은 정부로써 뒤에서 책임져 줄 주체가 없다.(물론 IMF와 ECB가 있긴 하지만 얘네들이 먹여 살리는데도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때문에 이들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는 꽤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데 유럽연합의 붕괴까지는 안 가더라도 이들이 정상화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부채도 자산이다.” 부채를 독려하던 시절이 바로 지척에 있었다. 물론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한 부채’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러한 부채는 경제학에서도 생산요소로 분류하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긍정적으로 본다. 세간에선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에 이은 리먼브러더스사태만을 주목한다. 그래서 모든 위기의 원흉은 조건반사적으로 미국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당장 내가 살고 있는 한국땅만 쳐다봐도 부동산 거품이 어디 미국만의 문제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동시에 꿈에 부풀어 올랐다. ‘부자되는 꿈’ 말이다. 부동산을 사기만 하며 부자가 될 줄 알고 은행으로 뛰어가 대출받기에 혈안이 되었다. 물론 돈을 빌려주는 쪽 또한 곳간을 아낌없이 열어주었다. 이렇게 부풀어 온 거품에 리먼브러더스라는 방아쇠가 당겨졌을 뿐이지, 리먼브러더스라는 전염병환자가 청정지역에 난입해 난장판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쨌든 간에 전 세계가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부채는 갚아야 될 빚이다. 물론 배째라고 할 수 도 있다. 어느 길로 가던 간에 쉽고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전자는 꽤 긴 시간 동안 부채를 갚아나가야 한다. 부채가 일정수준까지 조정 되야 소비가 다시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자는 뭐 다시 한번 극심한 고난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저자는 현재 위기의 해결책으로 대내적으로 증권화,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신용평가기관의 개선등을 주장하고 대외적으론 미국-중국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불균형문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크루그먼의 말대로 ‘미국이 중국의 유해물질을 사주면 중국이 그 돈으로 미국의 휴지조작을 구매하는 관계’에서 비롯된 불균형 문제를 이야기 함인데, 진작부터 이 둘의 밀월관계가 해체되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는 바, 미국보다는 중국의 움직임에 귀추가 더 주목된다. 중국은 최근 미국의 채권보유비중을 꾸준히 줄이면서 일본이나 한국의 국채를 매수하고 있다. 또한 과열된 자국의 부동산 열기 때문에 중국의 부동산 투자자들이 일본이나 한국의 제주도로 몰리는 바 화들짝 놀란 일본인들이 중국이 일본을 통째로 사들인다고 호들갑을 떨기까지 했는데, 어쨌든 중국이 향후에 어떤 움직임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정리할지 지켜봐야겠다.
인플레이션이 될지 디플레이션이 될지 – 책에서는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덕에 시중에 흥건하게 풀린 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지금 9월 현재는 디플레이션 쪽에 무게가 좀 더 가있지 않나 생각한다. –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시기에서 위기를 해쳐나가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규제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위기에 맞춰 설계된 규제는 그 다음에 오는 위기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는데 저자 역시 같은 맥락에서 모기지 자체를 물어뜯지 말고 시스템을 뜯어 고쳐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효과적이고 단단한 규제가 있다면 위기를 통제 가능한 범위에 두고 충분히 흡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의 의견에 동감하며 언제가는 발표될 볼커 룰이 시장을 꼭 실망시켜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것은 규제가 확실하길 바라는 본인의 역설적인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