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들어주는 아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사계절 저학년문고 26
고정욱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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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어느 도시에서 열렸던 책잔치에 
별 생각없이 갔었다. 
서늘한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
양쪽으로 키가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그곳에서 우연히 
가방 들어 주는 아이의  저자인
고정욱 작가의 북 콘서트를 들었다.
휠체어에 앉아 우렁찬 목소리로
조금은 특별한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말씀하시던
고작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석우는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다.
사회에서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학습 받지 못했지만 
다리가 불편한 친구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 준다.
물론 자발적 선택은
아니다. 영택이네 집과 
가는 길이 같았기에 
담임 선생님께서 그리
하라 하셨던 것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동화속 주인공은 석우다.
장애인 친구를 둔
정상 아동의 어려움과 복잡한
마음을 저학년 아이들의
눈높이로 잘 표현했다.

이 책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백남원씨의 그림이다.
2~3페이지마다 한 번씩
보이는 삽화는 석우의 마음과
영택이의 마음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잘 담아낸다.
글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을 충분히 잘 살렸다.
파스텔톤으로  처리된
그림들은 따스한 온기를 풍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자에 대한 냉정한
시선에 작은 불씨를 피워 주고 싶다는 듯.

몇 달 전, 김성태 의원 지역구에서
벌어졌던 장애인 학교 설립을 둘러싼
어른들의 이기적이고 천박한
행동들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2학년 석우보다도 
못한 못난 어른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이 책이 더 애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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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정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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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그렇다고 아주 길지도 않은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면서 모두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이야기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이야기면서 살인자의 이야기다.

생의 이야기면서 죽음의 이야기다.

인간을 구원할 신의 이야기면서

무엇도 파괴할 수 있는 자연의 이야기다.

기독교의 이야기면서 이슬람의 이야기다

종교 이야기면서 사람의 이야기다.

악의 이야기면서 선의 이야기다.

전쟁의 이야기면서 평화의 이야기다.

서양의 이야기면서 동양의 이야기다.

과거의 이야기면서 현재의 이야기다.

전생의 이야기면서 지금 여기의 이야기다.

 

우린 모두 유랑자..

보이는 모든 길이 길이라서 정작 갈 길을 모른다. 잃는다.

우린 모두 유랑자..

우주의 모든 것이기에 아무것도 아니다.

완벽하게 비워야 비로서 채워지는 신비한 풍경

그 곳에 서 있으면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무엇을 만나고 싶은가..

우린 모두 유랑자.

 

인간 역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본과 종교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의 필요에 의해 종교는 갈기갈기 변신했다.

이 책은 종교의 원형에 대한 흐릿한 스케치다.

인간 역사의 한 기둥인 종교를 통해서

인류의 삶과 죽음을 설명한다.

시간과 공간의 뒤엉킴이 흥미롭다.

인간과 인간 사이, 그 인연의 뒤틀림이 무섭다.

중세 십자군 전쟁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을

오버랩시켜서 인간의 최선과 최악의 행동들을

나열하고 서술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전생이라는 다소 진부해진 소재로

이렇게 탄탄한 흥미와 몰입를 불러일이킬 수 있는

작가의 문장력이 보기 좋다. 읽기 좋다.

정찬이라는 세계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

혼동, 혼미, 혼절, 혼란스럽지만

나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는 진리의 그림자가 얼핏 보인다.

서성인다. 아무도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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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2
권김현영 엮음, 권김현영.루인.엄기호 외 지음 / 교양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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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막 도란스 기획 총서2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겉표지는 온통 세롤리안 블루(cerulean blue)로 
가득하고 카드뮴 옐로우(cadmium yellow)로 
가늘게 쓰인 identity, colonial, modern, feminism 
등등의 단어들이 보인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높이인 
이 단어들은 가로로 7줄을 형성한다. 
가로 14센티미터, 
세로 21센티미터의 
그리 크지 않은 직사각형인 
이 책 전면을 덮는다. 단어가 곧 디자인이 되어
책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대변한다. 
책에는 6편의 글이 실려 있다. 
6명의 글쓴이들 중에서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은 딱 2명뿐이다. 정희진 선생님과 엄기호 선생님. 
수원시 평생 학습관에서 들었던 정희전 선생님의 
강의가 생각났다. 얼음과 불꽃을 동시에 
품고 있는 정 선생님의 얼굴은 아직도 
그날의 강의 내용보다 선명하게 남아있다.
 
6편의 글은 서로 다르다. 더 학구적인 글도 있고 
더 현실적인 글도 있고 더 쉽게 읽히는 글도 있고 
더 공감할 수 없었던 글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라는 주제 안에 모여 
나름의 문제제기를 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현실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같은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다. 
한남(한국남자)이란 무엇인가?
근대를 자신의 의지로 획득하지 못한 
식민지 남성성의 정의와 한계는 무엇인가?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남성성과 남성 신체의 연관성은 논리적인가? 
보편성과 남성성의 연결은 논리적인가? 
이성애 제도속의 남성성은 무엇인가? 
트랜스남성의 남성성의 정의는 무엇인가? 
트랜스남성의 추구해야 할 남성성이란 무엇일까? 
등등 수많은 물음과 대단히 복잡한 질문에 답하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는 방향성 말이다.
   
『감명 깊은 구절』
   
Ⅰ. 성 차별이나 가부장제 사회의 불합리성에 대해 말하면 
여성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우리는 다 알죠. 
이런 교육이 진짜 필요한 사람은 남자들이에요. 
그래야 세상이 변하지. 우리끼리 만날 이야기해봤자....... ” 
일부 남성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p. 29)
   
-이유: 
여성교육학 과목을 공부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 나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어떤 방식이 있는지 알고는 있었는가? 왜 나는 어릴 때부터 여성학을 접하지 못했을까? 초, 중, 고등학교에서 여성학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의 성별 관련 시각에 던진 의미:
당연히 아직은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 학기 여성교육학을 수강했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님을 안다. 살아가면서 생각이 진화를 거듭하고 행동이 수정되어 완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것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20~30대를 보냈다. 그래서 놀라웠다. 여성주의 발전사를 동영상 강의로 공부하면서, -여성주의 교육, 시공을 묻다-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이전세대 여성주의자들의 험난한 고군분투에. 또한 감사했다. 내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권리가 그들의 악전고투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국가가 임의의 공간이고 근대의 산물이듯 여성의 지위, 여성의 역할 등등도 절대적이지 않고 정치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남성보다 여성이 먼지 인지하고 제대로 깨닫는 것이 맞는 순서다. 우리(여자)는 여성학을 피상적으로 알고 파편적으로 인지한다. 누구의 문제도 아닌 자신의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특별하고 유별난 여성들이 하는 공부쯤으로 생각한다. 위의 인용글 속의 여성 수강생들은 무엇을 다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그리고 그 여성 수강생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내가 지금보다 더 열성적으로 여성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Ⅱ. 남성은 정체성이 아니라 포지션이다. 
모든 남성은 직접적인 성 차별의 
수혜자(최소한 평생 성폭력의 공포에 시달리거나, 
임금의 절반만 받지 않는다)이자, 잠재적인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 그것은 남성 개인의 
성품이나 가치관이나 성찰과 무관하다. (p. 56)
   
-이유:
남성의 정체성을 생물학적으로만 해석했던 시각에 균열을 만들어준 문장이다. 
   
-기존의 성별 관련 시각에 던진 의미:
나는 왜 남성의 정체성을 단순하게 신체적으로만 생각했을까? 나의 여성성 또한 생물학적으로 생각했지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안목이 부족했다. 지식이 부족했다는 것이 맞겠다. 정희진 선생님의 글은 명쾌하다. 내가 보지 못한 곳을 비추는 반짝이는 불빛이다. 남성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유리한 입장이고 이것은 남성 개개인이 선택해서 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 포지션이 맞다. 그리고 이런 문화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한남(한국남성)중에서는 없다는 정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이다. 누가 기득권을 스스로 내어 놓겠는가! 쉽지 않다. 하기 싫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아무도 안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Ⅲ. 군대에 입대할 가치가 있는 남성을 규정할 때, 
1963년 제정된 신체검사 관련 검사 규칙부터 
최근의 규칙까지 계속해서 음경 및 고환이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외부 성기 형태는 일상생활에서 가시적 영역이 아니며, 
한 개인의 복장이나 행동, 말투 등으로 남성성을 
재현하는 데 문제될 것 없는 신체 부위다. (p. 143)
   
-이유: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남동생 혹은 오빠가 없는 나는 군대를 앞두고 받는 신체검사 체크 리스트의 내용이 무엇이지 알 수 없었고 그리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건강한 남성을 선발하는 기준 중에서 성기에 관한 부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고 특히 정자 수의 많고 적음이 도대체 체크 리스트 안에 왜 들어있어야 하는지 아직도 알 길이 없다. 
   
-기존의 성별 관련 시각에 던진 의미:
군복무 혹은 군대를 통한 사람/남성 만들기는 다른 기획과 의도를 품고 있다는 루인씨의 말에 동감한다. 근대 사회는 규격화된 남성 신체에 남성성 이식한다. 이식에 합당한 논리적 근거는 없다. 서구 외과 의사의 사회적 지위 변천사를 통해 본 남성성의 형성과정이 흥미로운 이유다. 
   
Ⅳ. 트랜스남성은 대중목욕탕을 ‘안 간다’기보다 ‘못 간다’. 
그래서 더 가고 싶어 한다. 그들은 대중목욕탕에 
단지 몸을 씻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트랜스남성에게 그곳은 남성 되기의 조건과 
남성 집단 내 소속 여부를 검증받는 최고 수위의 공간이다. (p. 229)
   
-이유:
이 문장을 읽고 처음으로 트랜스남성의 삶을 상상해보았다. 내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그들에게는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시험 받고 들킬 수도 있는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측은하다. 그렇게 산다는 것은 대단히 불편하고 불행하다. 누가 트랜스남성의 일상을 살얼음판을 걷듯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는가? 
   
-기존의 성별 관련 시각에 던진 의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답답한 현실이 처음으로 진심 안타깝게 느껴졌다. 내 주위에는 트랜스남성도 트랜스여성도 없다. 그들의 일상을 나의 일상처럼 현실적인 감각으로 체험하기는 어렵다. 텍스트로 접근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5명의 트랜스남성 인터뷰 내용이 나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나의 인식 개선은 분명히 이루어졌다.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채로운 성이 있다. 인간종도 마찬가지일 터. 인터섹스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성소수자의 성정체성에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는 여러 방식의 사유를 존중하자.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반도 멀리 있지 않다. 인터뷰에 응한 5명의 트랜스남성은 한국에서 사는 게 행복할까? 생각해 본다. 답은 우리들의 몫이다.
   
Ⅴ. 버틀러는 젠더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체적인 실재’로부터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존재가 아니라 
반복적 수행을 거쳐 구성되는 사회적 규범(norm)이자 
임의적 범주(category)라는 것이다. (p. 40)
   
-이유:
생물학적인 특성이 행동 양식을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남자다운 이유가 남성 신체를 소유해서, 근원이 남자에게 있다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여자다운 이유가 여성 신체를 소유해서, 근원이 여자에게 있다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남자다움이 남자에게만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여자다움이 여자에게만 있다는 생각 또한 착각이다. 
   
-기존의 성별 관련 시각에 던진 의미:
이런 이분법적인 답답한 생각이 젠더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 여성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수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차분하게 앉아서 자신을 들여다보면 명쾌하지는 않지만 얼마간의 답을 얻을 수 있다. 내 안의 수많은 나는 한가지의 성향만 있지 않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나를 생물학적 입장으로만 정의 내린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지막지하게 단순하고 단조로운 생각이다. 이런 생각의 희생자는 우리 모두다.  
   
Ⅵ. 한국 남성은 역사상 한 번도 외세와의 관계에서 
한국 여성을 보호한 적이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소유한 여자를 적에게 빼앗긴 자존심의 
상처를 다시 한국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나 
구타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p. 63)
-이유:
이 문장을 읽으면서 자동적으로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환향녀’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의 이 단어가 지금도 한국에서 남자에게 쓰는 욕이 아닌 여자에게 쓰는 욕이라는 사실이 문제의 본질이다. 
   
-기존의 성별 관련 시각에 던진 의미:
고려시대에 몽고로 조선시대에 청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전쟁터로 끌려 간 수많은 여자들은 묻는다. 근대를 자신들의 손으로 획득하지 못한 식민지 남성의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무엇이라 칭한 무엇조차 없다.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남성성은 처음부터 부재중이다. 
   
여성주의 발전사는 무척 지난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주의에 무심했다. 
서구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등등의 여성주의 제1,2,3의 물결은 에코 여성주의라는 
이름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스스로 그러해야 할 자연을 빼고 
스스로 이러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구태의 관성으로 여전히 그러한 현상이 천지다. 
관습, 문화, 미풍양속이라는 허울 속에 감춰진 
불공정과 불의를 불편부당(不偏不當)으로
 바꾸는 작업이 절실하다. 
한국 여성주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서구의 여성주의와 무엇이 달라야 할까? 
한국남성은 구제불능인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질문 앞에서 아직은 
선명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지만 질문을 
피하지 않고 내 일상에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현실공간에서 답이 될 수 있는 
진짜 해결책을 찾아보자. 
이것은 나의 권리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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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먹는 일기장 사계절 중학년문고 33
송미경 지음, 이희은 그림 / 사계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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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아이가 있다.
동진이와 지민이.
한 명은 남학생 한 명은 여학생이다.
한 명은 보라색 아파트 한 명은 빨간색 아파트
한 명은 엄마의 욕심으로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한 명은 엄마의 힘든 노동만으로는 별로
할 것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 상반되는 아이들이지만
둘은 거의 똑같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에 있어서는
말이다.

기다림..
원하는 것에 대한 깨끗한 욕심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금은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참기..

 사라짐..
일기를 먹는 일기장처럼
나의 진짜 추억이
나의 진짜 바람이
차근차근 차곡차곡
쌓이는 지구 반대편
어느 곳에선
현실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그곳에서
두 명의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연주한다.
아름다운 불협화음.
우린 모두 다르니까
똑같은 연주를 할 필요가 없다.
다르기에 더욱 
멋지게 울려 퍼지는 하모니.

알고 있니?
세상은 아주 넓고
우리 눈에 별로인 것이
다른 눈에는 최고일 수 있고
우리 마음에 슬픔인 것이
우리를 단련시키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어렵지만
아주 어렵지만
천천히
꾸준히
기다리자. 충분히 음미하자.
나의 소중한 소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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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한 집
정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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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들어갔다.

정찬이라는 세계로.

 

내가 애정하는 정희진 선생님께서

정찬 작가를 애정하신다는

글을 어느 신문지 지면에서 읽고

나도

이 작가가 궁금해져서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정결한 집이라는 제목의 책은

정결한 집
흔들의자
모과 냄새
녹슨 자전거
오래된 몽상
세이렌의 노래
음유시인의 갈대 펜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라는 여덟편의 단편소설이 들어있다.

 

책을 읽는 내내

죽음에 매달려 죽음에 시달려

죽음에 이끌려 죽음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는

작가를 만났다.

 

세상의 수많은 죽음의 형태와 이유

그 어쩔수 없는 숙명에 대한

애절한 노래다.

나는 단편 소설을 읽었다

작가는 단편 소설을 썼다.

그렇지만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시(詩)다.

작가는 단편 소설의 형태로

글을 구성했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글자 하나하나에서 풍겨 나오는

글자 하나하나의 자태는 의미는

언어 그 넘어의 것을 소개하고

음미하고 생각하고 바라보게 한다.

이것을 시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책은

은유와 시간의 뒤섞임

현대 사회의 문제와 역사적으로 아직

청산되지 못한 부조리한 상황

개인의 문제와 구조의 문제 등을

죽음을 통해 드러내고 산자와 죽은자의

관계설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모호성에 집중한다.

 

누가 죽었는가? 누가 죽였는가?

무엇이 죽음인가? 죽음에 저항하는 힘은 무엇인가?

나의 머리는 이런 물음들로 가득하다. 아득하다.

책이 풍기는 마력에 내가 없어지고

기꺼이 나는 풍덩 책 속에 빠진다.

 

정찬이라는 세계에는

죽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또다른 그의 책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죽음에 천착한 이의 생에 대한 시선은

어떨지 궁금하다.

 

내 옆에

작가의 다른 책 유랑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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