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 p. 13, 14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 p. 38

스피노자는 감정을 능동적 감정과 수동적 감정, 곧 ‘행동‘과 ‘격정‘으로 구별한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 p. 39, 40

그러나 준다고 하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물질적 영역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역에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이 말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 ㅡ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顯示)를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시킨다. 그는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
그러나 그는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 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야기된 것은 그에게 되돌아온다. 참으로 줄 때, 그는 그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받지않을 수 없다.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자로 만들고, 두 사람 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 p. 42-43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만일 사랑의 세 번째 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은 아니다. 존경은 이 말의 어원(respicere = 바라보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이와 같이 존경은 착취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p. 47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p. 62

모성애는 어린아이에게 살려고 하는 소망뿐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랑‘을 천천히 길러준다. 이러한 사상은 성서의 다른 이야기에서도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약속된 땅(땅은 언제나 어머니의 상징이다)은 ‘젖과 꿀이 넘쳐흐른다‘고 묘사되고 있다. 젖은 사랑의 첫 번째 측면, 곧 보호와 긍정적 측면의 상징이다. 꿀은 삶의 달콤함, 삶에 대한 사랑, 살아 있다는 행복감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사실상 어린아이 ㅡ 그리고 어른 ㅡ 사이에서 ‘젖‘만 먹은 자와 ‘젖‘과 ‘꿀‘을 먹은 자를 가려낼 수 있다. - p. 73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의 힘의 생산적 전개에 바탕을 둔 동일성, 곧 자아를 인식하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우상화‘하기 쉽다. 그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부터 소외되고 이 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투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최고 선, 곧 온갖 사랑, 온갖 빛, 온갖 지복을 간직하고 있는 자로서 숭배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힘에 대한 모든 감각을 박탈하고, 자기 자신을 찾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 p. 134

사랑은 휴식처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고 일하는 것이다. - p. 139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가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프롬이 1973년부터 1980년 세상을 뜰 때까지 살았던 로카르노에서 내가 그의 조수로 있었을 때, 그는 내게 아주 간단명료하지만 정확히 정곡을 찌르고 차츰 심도 깊어지는 질문들을 자주 던졌다. 가령 그는 지금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고, 어떤 계기로 하필 그 책을 읽게 되었으며, 읽으면서 무엇이 와 닿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물었다. 내가 별 내용이 없다거나 지루하다고 말하면 왜 그런 사소한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는지 알고 싶어했다. 나 자신에게 실제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정말로 마음에 와 닿으며,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지에도 관심을 보였다. - p. 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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