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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
홍선기 지음 / 모모 / 2023년 6월
평점 :
가끔 마음 놓고 써도 돈이 넘쳐나는 나를 상상해 본다. 아주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정말 그럴까? 장편소설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에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거대한 부를 이룬 벤처 사업가 케이시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세계일주를 하고, 십수개의 방과 마당이 있는 거대한 저택에 살면서도 결핍과 허무함을 느끼는 케이시. 그리고 소박한 행복을 좇는 그의 친구 가즈키를 보며, 단순히 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을 알게된다.
젊고 잘생긴 부자 케이시는 상대적으로 소박한 삶을 살며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해 데이팅 앱을 통한 일회성 만남만을 지속한다. 앱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고, 개중엔 마음이 맞는 이성을 찾게 되기도 하지만, 이 인연을 지속하지는 못한다. 진지한 관계로 발전한 여성들 마저도 결국에는 또 하나의 상처로 남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인물들이 돌아가며 1인칭 화자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속마음을 통해 진솔한 생각과 감정,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오는 혼란 및 상처까지 고스란히 독자에게 말해줌으로써 더더욱 그들의 상황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어릴 적 부루마블 보드게임을 즐겨 했었다. 잘 알다시피 부루마블은 일정한 돈을 갖고 게임을 시작하여 점차 땅을 넓혀가며 부를 축적하는 게임이다. 내가 산 도시와 빌딩이 늘어나며 늘어나는 부에 재미를 느끼지만, 어찌 하다가 나 혼자 과도한 땅을 보유하게 되면서 돈이 넘쳐나는 상황이 오면 이내 재미는 반감이 된다. 부를 축적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던 거지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된다고 하여 게임의 재미가 커지는 것은 아니라는걸 나는 이 게임을 통해 배웠다.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잃게 되고, 살아가는 것이 덧없게 느껴지는 것만큼 불행하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케이시와 가즈키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누구도 악인은 아니었다. 다만 내면의 상처가 가득한 외로운 사람들이었을 뿐.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려 간 현대판 위대한 개츠비같은 진한 여운의 소설이었다.
덧, 나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냐면, 단연코 겨울. 영혼은 사라졌을지라도, 껍데기였던 이 몸뚱아리가 빨리 썩어버리는건 싫다.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