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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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로기완'의 행적을 좇는 '나'의 시선에서 서술된다. 방송작가인 '나'는 얼굴에 큰 혹을 달고 살아가는 '윤주'에게 큰 연민을 느끼고, 그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삶을 다룬 방송을 추석 연휴로 미룬다. 연휴에 후원금이 많이 걷히리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달이 미뤄지는 동안 '윤주'의 얼굴에 달린 혹은 악성 종양으로 바뀌고, '나'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이후 우연히 접한 잡지에서 로기완의 이야기를 접하고 무작정 그가 탈북 이후 머무르게 된 벨기에로 떠난다. '나'의 여정은 로기완의 흔적을 좇는 것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으로 설명된다. '나'는 항상 '윤주'를 생각했으나, 그렇기에 '윤주'에게 차마 연락할 수 없고 그녀의 삶을 마주할 수 없다. '나는 윤주의 시간도 궁금하다. 항상 그애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높은 강도의 수치심과 분노를 배우게 했고, 결국엔 악성으로 변해 목숨까지 위협하게 된 거울 속의 그 혹을 그애가 어떤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있을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타인의 무분별한 시선에 놀란 마음과 상처 입은 눈물로만 이루어져 있던 종양이 악의를 잔뜩 품은 암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 그 과정을 납득하고는 있는 건지 정말이지 알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전화기를 들지 못한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로기완의 발자취를 따라 밟는다.

로기완은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나, 홀로 벨기에로 밀입국한 왜소한 청년이다. 어머니는 그와 함께 북한 국경을 넘었으나 중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로기완은 어머니의 시신을 팔아 마련한 돈을 가지고 브뤼셀로 온다. 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현실은 사뭇 차갑다. '그때껏 '헬로'나 '봉주르'조차 제대로 발음해 본 적 없는 동양에서 온 키 작은 청년은 서둘러 운동화를 구겨 신은 채 이곳을 나서면서 이 도시에서의 삶이 이처럼 누군가의 반복되는 무시와 경멸, 그리고 자신을 향한 과장된 경계심과 불필요한 오해로 채워질 거라는 걸 예감했다.' 이후의 서술들은 로기완이 타국에서의 삶을 어떻게 힘겹게 살아냈는지에 대한 기록들이다. '나'는 로기완의 힘겨운 삶을 반추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나'가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과 위로, 연민에 대한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누군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나는 무력했고 아무것도 몰랐으며 항상 너무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라는 서술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윤주'로 인해 자신이 타인의 고통을 너무 쉽게 여겨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나'가 스스로에 대해 '잘 웃지도 울지도 않는 메마른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라든지, '나 자신의 슬픔에까지 진심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어 어리석은 검열을 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라든지.

하지만 소설은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로기완은 거리에서 쓰러진 이후 경찰에 의해 발견되고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이후 '박'의 도움을 통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박'과의 연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박'은 로기완의 자술서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덧붙인다. '우리가 정치적인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놓치게 되는 것은 개개인의 고통이며, 이것이 우리의 비극임을 부디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박'은 이후에도 로기완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내의 죽음에서 기반한 죄의식을 바탕으로 '박'과 로기완은 연대한다. 이후 로기완은 '라이카'와의 유대를 통해서도, 서로의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삶을 이어 나갈 의지를 갖게 된다. '라이카'를 따라 기존의 난민 지위를 포기하고 영국으로 떠나는 로기완의 모습은 자신이 삶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로기완이 자신의 삶에서의 상처들을 극복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되듯, '나' 역시 로기완을 만나는 여정에서 자신이 가졌던 상처들을 극복해 나가게 된다. 살아 있음으로서의 가치를 느끼고,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연대의 가치를 느끼는 것. '나'의 여정은 이를 알기 위한 것이다. '박'이 '나'에게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나'의 삶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또한 '나' 역시 아내를 안락사시킬 수밖에 없었던 '박'에게, 아내의 가는 길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을 주게 되며 '박'을 돕게 된다. '나'는 미뤄 두었던 '윤주'와도 관계를 회복한다. 울음 끝에 '윤주'가 '충분하다'고 말해 준 것, 그것으로써 '나'의 생애는 잘 마무리될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완전히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고통을 다는 알 수 없을지라도,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의 마음을 지니는 것, 그럼으로써 타인의 생애를 자신의 것처럼 돌아보고 타인과 연대할 필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나'가 로기완을 통해 결국 알게 된 것은 탈북자 로기완뿐 아니라 '나'이기도 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로기완을 통해, 소설 속 '나'를 통해 우리를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날을 세우고 서로 달려드는 요즘의 사람들에게도 로기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책을 덮으며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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