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유월의 바다, 생동감이 넘치는 휴양지의 해변이 아니라 적막하고 고요한,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해변의 여관. 그런 곳을 상상하면 이 소설의 분위기가 금방 설명된다. 후Hu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계, 뜨거운 태풍이 불어오는 42도의 여름, 잦은 국지전과 시위가 일어나는 국제 정세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위기로 지칭되나, 이 세계에서의 위기는 '뻔하고 상투적이고 고리타분하고 그러므로 무감각한 주제(48쪽)'일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장욱은 '재난이나 종말이 아니라 '재난 이후' 또는 '종말 이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182쪽, 작가의 말).'라고 밝힌 바 있는데, 팬데믹을 겪고 난 지금의 모습과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프로젝트 시집 『지구에서 스테이』에 실린 「적의 위치」에서도 이장욱은 이미 재난의 일상화에 주목한 바 있다. '헤이, 나의 적은 공산주의나 제국주의인 줄 알았는데...... 외계인이나 악몽인 줄 알았는데...... / 당신이었군요. / 어째서 나의 적은 행복마트에 세기세탁소에 침울한 날씨에 / 거리에서 우연히 나를 만나 안녕, / 하고 인사를(이장욱, 「적의 위치」 중)'이라 말하는 데에서 재난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상이 되어 버렸음을 예감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재난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하지만 소설 속 네 인물의 삶은 그런 일상화된 위기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살아간다. 여전히 누군가는 일기 쓰기나 연극 속 인물에 천착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떠나간 사람을 추억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한다. 모수는 '일기광'으로 매일매일 무언가를 기록하는 데 중독되어 있다. 일기와 자신이 구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연은 그런 모수를 관찰한다. 천은 연극 배우로 자신이 맡은 역할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데, 이 역시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흐려져 있다는 점에서 배역에 중독된 인물이다. 한나는 그런 천을 관찰하고, 이물감을 느끼고, 천을 떠난다. 한나가 떠난 이후 천은 바다를 찾아 해변여관에 간다. '바다는 아름답지 않고 낭만적이지 않고 그립지 않겠지만 어쩐지 더 피폐하고 가혹하고 무정한 바다를 보고 싶었다. 바다는 황량할수록 바다 같을 것이었다. 바다는 두려울수록 바다 같을 것이었다.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수록 바다 같을 것이었다(136쪽).'와 같이, 바다를 찾아 떠난 천은 해변여관에 머문다. 소설의 제목은 여기에서 왔을 것이다.

이들은 소설의 원제처럼 '침잠'해 간다. 침잠해 가며 서로 간의 경계도 없이, 구분도 없이 사라지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제 네 사람의 이야기가 해변여관에서 다같이 이어진다. 해변여관에서 '연의 중얼거림을 따라서 천이 중얼거렸다. 언젠가 자신이 해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 말을 한 것이 한나였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154쪽).'라는 기술과, 연이 중얼거린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가 모수의 일기에 있었던 문장이었다는 점을 종합하면 네 명의 인물은 서서히 경계 없이 구분되지 않는 셈이다.

어쩌면 재난은 모든 것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외부는 외부인데 내부와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 내부이면서 동시에 외부인 곳에서 / 도무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비명을 지를 수도 없는 곳에서 / 격리된 곳에서 / 우리는 살아갔다 … 오늘의 바다는 영원의 바다라서 하늘과 구분되지 않습니다(이장욱, 「적의 위치」 중).'라는 시 구절이라든지, 소설 속 인물들이 구름과 안개와 연기의 구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든지, 조금씩 바다에 잠식되어 가는 공간인 해변여관. 이장욱은 계속해서 경계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사실 나는 진실의 일면이고 양면이고 하는 것은 관심 없어요. 진실의 온 모습 따위가 뭐야.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시간의 수많은 차원이라는 것도 웃기고 우스워. 우습고 웃기지(54쪽).'에서 경계의 무의미함을 진작 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침잠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영화 <애프터 양>에서 끝은 곧 시작이라는 말을 믿느냐는 카이라의 질문에 양은'저는 괜찮아요. 끝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요.'라 말하며, 그래서 슬픈 적도 있냐는 질문에는 '무無가 없으면 유有도 없으니까요.'라 말한다. 이 영화의 구절을 함께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그 아무것도 남지 않음은 역설적으로 이전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가. 소설의 제목이 바뀐 것처럼, 침잠하는 가운데에도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침잠하고 나서도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모른다. 모수가 모수의 유령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허무와 절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든 생각해 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