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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옮고 그름은
나중에서야 알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택은 쉽지만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선택을 강요받을때는 수많은 생각이 지나갑니다 그 생각속에는 현재의 생각뿐 아니라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생각까지 혼합되어 선택이 더 어려워지고 혼란스러워
집니다

이런 생각속에는 나의 욕망, 즉 감정이 녹아있습니다 선택에 있어 나의 감정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선택에 있어 감정 보다는
이성에 의지 합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교육이 감정 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는 교육이었으니깐요
하지만 강신주는 감정의 중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또한 잠자고 있는 감정을 발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아기 시절 어린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웃음짓고
싫어하는 것에 울음을 터트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움, 인간 본연의 모습에 우리의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 나이가들어감에 따라 점점 희석되고 어느순간에는 메마른 호수처럼 그렇게 감정은 굳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감정의 문을 닫고 살고 있는것은 아닐까요? 기쁠때 기뻐하지
않고 슬플때 슬퍼하지 않는 무표정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유아기
시절 세상의 고난을 다해쳐 나갈수 있는 작은 미소를 가진 우리의 얼굴이 언젠가 부터 무표정의 얼굴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는 삶의 의미를 다른곳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이런 우리의 무표정의 얼굴에 작은 미소를 가져다줄수
있을지도 모를 작은 파장과도 같은 도서 입니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우리는
수업을 받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사소한 것에도 기쁘고 슬프고 화가나고 환희의 감정에 쉽게 동화 했지만 성인이 된 우리는 나 아닌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관여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메마른 삶의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재미있는 구성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이책을 한번에 통독하는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자신의 감정을 찾아본다면 더큰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책은 총 4부 48장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챕터의 구성은 별 의미 없어 보입니다 1부 땅의속삭임, 2부 물의노래,
3부 불꽃처럼, 4부 바람의흔적, 이책은 이처럼 땅,물,불,바람 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감정을 자연의 구성으로 나누고 있는 것은 아마 우리의 감정의 원초가 자연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이책의 48장으로 나누고 있는 각각의 감정을 명칭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48개의 감정은 스피노자의 에티카 [ Ethica ]를 근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에티카 [ Ethica ]는 윤리학이란 뜻입니다
결국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감정을 명칭을 이해하고자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철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책이
철학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철학은 누군가 가르쳐서 알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은 스스로 깨우쳐서 자신만의 사고를 철학적으로 정립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책을 보는 또다른 재미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먼저 보는 것입니다 보통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는 책의 내용과 상관없는 신변잡기식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지만 이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책을 쓸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48가지의 감정을 이야기 하지만 사실 감정이란 너무 주관적이라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를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삭막해져 가는
이시대에 우리가 감정에 대해서도 너무 무관심했다는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선택에
있어 이성적인 판단도 필요하겠지만 이성보다 내면에 깔려있는 우리들 감정은 무시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의 시간도 필요해 보일듯 싶습니다
또한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왜? 다른가를 알수 있는 작은 수업이 될수도 있는
책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랑' 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이에게 그것이 '동정'이 될수 있고 아니면 '연민'이 될수도 있습니다 물론 감정을 이분적으로 구분하는것도 좋지는
않지만 서로 느끼는 그 무엇이 어떤 감정
이었을까 하는 의미를 알아볼수
있는 기회가 될수도 있습니다

이책의 작가는 스피노자라는 철학가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스피노자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읽어던 문학작품의 일부분을 가져와
문학작품속의 감정을 우리가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물론 그 문학도서가 감정의 전부를 대변한다고 할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작가는 문학소설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그 감정을 최대한 이끌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감정을 좀더 알아보고 싶을때 그 문학도서를 읽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어 8장 탐욕편에서 F. 스콧 피츠제럴드의『위대한 개츠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탐욕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함 입니다 하지만 탐욕의 감정을 맛보기 식으로만 이야기하거나 전반적으로 짧게 요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탐욕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다면 위대한개츠비를 읽어보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스스로 그 감정을
작품속에서 경험을 해보아야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감정에 좀더 집중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48가지의 감정중에 "욕망" 과 "슬픔" 이라는 감정에 집중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욕망이라는 감정은 대부분의 감정에 중첩되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슬픔이란 감정이 존재한다고 생각 되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의 이야기를 보면 인간의 행복를 중시하고 그 배경에는 자유가 동반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행복은 바로 욕망의 충족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동안 저에게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궁금한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크게는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이루는 것이 인간의 욕망 만이 아닐꺼라는 생각이었지요 물론 부와 명예는
인간의 자유를 기반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의 욕망은 무언가 얻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 감성에
따라 어떤것을 행할수있는 인간의 본질자체" 라고 이야기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스피노자의 에타카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조금더 설명하면 "욕망은 자신의 의식을 동반하는 충동이고 충동은 인간의 본질이 자신의
유지에 이익이 되는 것을 행할수 있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 자체"
라고 이야기 합니다
결국 욕망이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보다 내속에 내재되어 있는 충동이 이라는 겁니다
요즘 제가 고민거리 중에 하나가 나의 욕망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 이었는데 결국
내안의 충동이 나의 욕망이었습니다 스피노자의 욕망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욕망은 좀더 새로운 것 이었습니다 바로 인간은 혼자 살수없는 유한자라는
존재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유한자란 인간은 한번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언젠가 죽는다는 슬픔과 불안의 감정이 내안에 내재되어 있는 충동 이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감정이 사랑과 기쁨이 아닐까요? 욕망은 이처럼 다른 감정에 중첩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평생 슬픔,미움의 감정만으로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기쁨의
감정으로 살아간다면 어느쪽이 더 행복할까요? 정답은 너무 자명합니다 바로
사랑과 기쁨의 감정 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또하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나약함 입니다 바로 자신의 욕망을 지키지 못하는
비겁함과 나약함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스피노자가 지적했던 것과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근본적으로 인간은 외부적요건에
스스로 파괴되는 것을 방치하고 정념에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겁함과 나약함이 아닐까요?
이를 우리로 부터 지키기 위해 작가는 주인이 되는 삶을 이야기 합니다 '노예는 주인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고 욕망이라는 본질의 소리를 제거할수 없다'
고 합니다 결국 내가 주인이 되어 나의 욕망을 꿈꾸고 내가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문학소설을 같이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식의 내용전개가 처음에는
낯설지만 내안에 잠자고 있는 감정을 이끌어내기에는 제격이었습니다

또하나 관심있게 보았던 것은 '슬픔' 이라는 감정 이었습니다 슬픔 역시 욕망처럼 다른
감정과 중첩되어 있습니다 예를들어 '절망' '연민' '회환'등 같은 감정속에는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절망의 감정속에 슬픔이 있다는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명확하게 구별지어서 감정을 살펴보니 새로운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스피노자의 에타카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여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해 주었습니다
" 현재의 슬픔은 과거의 기쁨으로 치장하고 현재의 기쁨은 과거의 슬픔으로 기억"
한다는 것 입니다 너무도 절실한 말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슬픔속에 너무 매몰되지 않아도 된다는 슬픔을 치유할수 있는 이야기
같습니다 작가는 슬픔 이라는 감정을 이야기 하면서 시어도어 드라이저의『미국의
비극』이란 문학작품을 이야기 합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은 부와 사랑, 선택의 슬픔을 이야기 합니다 어느것을 선택해도 비극은 피할수 없습니다 그 속에 슬픔 이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작가도 이야기 했지만 이 비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수 없이 겪게되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지금같이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이와 같은 슬픔의 선택을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기쁨으로 생기는 욕망은 슬픔으로 생기는 욕망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작가는 현재의 슬픔을 과거의 기쁨으로 치장하고 현재의 기쁨은 과거의
슬픔으로 기억한다고 했으니 우리는 슬픔은 기쁨으로 감정의 치유가 가능 할것 같습니다 이처럼 슬픔이란 감정이 상대적인것을 강조
합니다
우리가 선택의 정점에 있을때 무엇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를 포기 하는
것으로 서로 상대적으로 바라보라는 의미 인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가 매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에 책임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 집니다 작가 역시 주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의 주인이 바로 내가
되어야 함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이런식의 감정수업이 총 48강좌나 있습니다 각각의 감정수업은
쉽게 지나칠수도 있고 스스로 어려운 문제를 새로 만들어 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식의 감정수업은 메말랐던 자신의 감정에 작은 물줄기를 대어 주는 역활이 될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스스로 노예의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감정으로 살아갈수 있는 작은 토대가 될 것
같습니다 주인의 감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행복한 삶을 위한 작은 한걸음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