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방송에서 한국 거주 독일인이 정말 일목요연하게 한 인물에 대해 평하는 것을 보았다.그 내용을 듣고 어찌나 생경하던지, 그 사람이 평하는 인물이 내가 알고 있는 그가 맞나 확인까지 했었다. 바로 조선의 4대 왕 세종에 관한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우스운 사실인 지 깨닫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세종은 꼭 '대왕'을 붙여서 칭하여야 마음이 편해지는 대상인데 이유는 모르는 ... 아직도 광화문 앞에서 최고의 장군에게 호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만큼 세종에 대해선 다 아는 것이 아니었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일 뿐이고 , 내가 아는 사실은 그저 피상적인 정보의 조각들일 뿐이고, 어느 한 조각만 유난히 확대되어진 이상한 퍼즐 조각일 뿐이다.

공교롭게도 이즈음 세종에 관한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얼마나 우연한 필연이란 말인가. 그동안 저자의 책들을 많이 읽어온 덕분에 별다른 고민없이 이책을 구입해 읽었다.재밌게 읽었고 흥미롭게 읽었고 의미있게 남겼다. 세종에 관한 평전 중 읽기 좋은 책 중 하나임이 명백하다. 이제 나도 조선의 4대 왕 세종에 관하여 조금은 알게 된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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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든 중반을 훌쩍 넘기셨다. 그 중 70년은 땅에 붙어 살았다. 땅에서 은퇴한 뒤 수 년 간 무료하고 질이 형편없는 노인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난 애써 외면하고 (나도 대개의 사람들처럼 남의 부모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살갑고 착하게 굴면서, 정작 자신의 부모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기 짝이 없게 군다) 무심하게 살았다. 자식이 많은 엄마도 그저 별 일이나 있어야 전화를 하는 정도셨고,  일련의 연중행사들이 있을 때만 나만 중뿔나게 튀고싶지도 않고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갖지 않고자, 평범한 정도의 성의를 표하며 지내고 있었다. 엄마가 지난 해부터 거의 거동을 못하게 되고 텔레비전만 보면서 우울해하며 지내고 계셨다.  그즈음에 나는 김두엽할머니 책을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참 멋진 인생을 살았고 살아가고 계신 아름답고 멋진 할머니라며 감동을 했다.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도 하고 선물도 했다.그러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아마 김두엽할머니 못지않을 세월을 겪었을 엄마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끔 지금 나로선 상상이 거의 불가능한, 젊은 나이의 엄마 이야기를 듣고는 했는데, "내 얘기 책으로 쓰문 소설 열두 권도 모지라다"라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 한번도 멋지고 감동적인 인생을 사셨구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매번 버전이 살짝 살짝 바뀌는, 노인들이라면 거의 다 비슷하게 가지고 있을 레퍼토리 정도로만 여겼다. 그래도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내가 참고 들어주며 장단을 맞춰줘야 하는 이야기로만 여겼다. 왜...... ...

엄마에게 김두엽할머니책을 사드렸다. 책을 단숨에 읽으신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한숨을 짓고 가슴을 쓸었다. 그리곤 "내 맘을 알아주는 자석이 있어서 참 고맙구나"라고 달뜬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엄마는 그할머니보다 더한 세월을 사셨잖우"라고 답을 하니 "아니다, 나는 이분에 비하밍 한창 부족하다"라고 답을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다. 그러고보니 늘 무언가를 배우기를 좋아하고 지식을 탐구하는 일을 하고싶어 했다던 속내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책을 보내드려보자 이제 땅에서 손을 놓았으니 아직은 글자를 읽을 시력은 되시니 큰 글자 책을 골라서 권해보자. 무슨 책이 좋을까, 어떤 장르가 좋을까,어떤 내용이 좋을까' 아무리 궁리해도 답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막막했다. 사람들에게 책읽는 일을 가르치며 사는데, 누구보다 책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력할 수가 없었다.알라딘에서 여러 키워드로 검색도 하고 알아보다가 큰글자책이 출간된 것,소설일 것, 쉬운 내용일 것, 익숙한 것이고 재밌을 것으로 정리하다보니 사씨남정기,심청전이 결과물로 나왔다. 제법 그럴싸한 결과물이어서 구해보내드리며 ,박완서작가의 소설집 하나와 나태주 시집 한 권을 같이 보내드렸다.  

엄마는 몇일 뒤에 연락을 해오셨고," 야야! 박완서 그냥반 소설은 참 재밌더라. 그런데 나는 읽을 줄은 아는데 도통 남에게 전달할 줄을 몰라서 말은 못하겠다만 단숨에 읽었다. 그냥반도 참 애닯게 살았더먼"라고 하셨다. 그리곤 박완서 단편들을 다 외운 듯이 말로 전하셨다. 그 이야기들이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엄마가 전해주는 박완서단편들은 맛이 났다.

"그런데 나랑 심청이가 무신 상관이라고 심청이를 보냈어? 나는 심청이 재미읎다.나는 시집이 좋더라. 니가 보내준 나태주인가 하는 그냥반 시.참 좋더라.을매나 좋던지 ..." 그리곤 나태주 시집의 시들을 줄줄이 외셨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였던가! 그렇게 흥이 나고 그렇게 일렁이는 시였던가! '엄마가 시를 좋아했구나.아니 엄마가 시를 읽을 줄 알았구나.아니 엄마가 시를 이해할 줄 알았구나,아니 엄마는 시를 쓰고 싶어하셨구나!' 나는 그냥 너무 놀랐을 뿐이다.아니 나는 그냥 너무 오만하고 무지했을 뿐이다.

평생 땅만 일구고 배움도 짧은 평범한 노인(그런데 알고보니 그 누구보다 배울 줄 알고 멋진 노인이다)에게 어떤 시집을 보내드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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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그의 본색은 그의 온 삶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ㅡ <<이야기와 주역>>,p.92

"인생, 머 별거 없어요. 오늘을 잘 살면 내일도 잘 살 것이고 , 오늘을 게으르게 살면 내일도 게으르게 살 거예요"ㅡ수행자 시관스님

 

*** 요즘 작은 텃밭을 일구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온전하게 독서하는 때가 드물어졌다. 이른 봄에 척박한 땅을 일구고 각종 씨앗과 모종을 심어놓았다. 이상기온으로 작물들이 냉해를 입고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위기를 맞았다. 작은 텃밭이니 화확약품을 쓰지 않고 오로지 땅심과 절기의 힘을 믿고 돌보기 시작했다. 작은 텃밭을 일구는 일이 점점 명상과 수행을 떠올리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어떤 조치를 취해놓고 그저 작물들이 회복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간신히 한가지 병해를 치료하고 나면 금방 뜻하지 않은 충해를 입는다. 조치를 취하고 뒤돌아서면 그 일들이 또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그래도 기다린다. 이 사소한 경험으로 농부의 마음을 그 애가 타는 마음을 짐작이라도 했다고 하기엔 염치가 없으나, 참 애가 탄다. 급기야 비약하자면 농부들이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던 심정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런 즈음에 읽게된 책이 공선옥작가의 에세이다. 그 책을 읽고 "아, 망했다. 아, 써버렸어. 이번 생은 글렀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났다. 내가 언젠가 글을 쓴다면 쓰고자 했던 내용을 쓰고싶던 문장의 형태로 이미 그가 써버렸다. 어쩔 것이냐. 세상에 거의 모든 것들은 이미 쓰여졌음을 다시 확인한다. 김두엽할머니의 책은 내게 그야말로 심플한 삶에 대해 말해주는 것 같다. 그 나이대에 들어선 이들의 입버릇같은 이야기지만, 정말 그 만큼의 겪음이 있는 인생-내 산 얘기를 책으로 쓰자면 소설로 열두권은 넘을 것이여-을 많지 않은 문장으로 보여준다.많지 않은 문장과 그림들이 어쩌면 열 두 권의 소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울림이 컸던 책이다. 그리고 역사속 인물들의 삶을 주역의 괘로 해석해내고 있는 책을 천천히 읽고 있다. 다 사람이 사는 일에 관한 책들이다. EBS다큐에서 보았던 깊은 산속 암자에서 수행중인 시관스님의 인터뷰 내용이 나를 다시 텃밭의 작물들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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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에서 하는 교양 강의 중 '박철수의 <아파트, 욕망의 역사>'를 흥미롭게 보았다. 박철수 건축학 교수의 주된 관점과 결론에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와 아파트라는 거주지에 대한 해석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의 강의에서 세운상가아파트에 대한 부분이 있었는데, 손정목이 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찾아 보았다. 그 책 5권에 1966년 부임한 김현옥 서울 시장이 도로건설,세운상가 건설,한강개발,시민아파트 건설 등의 순서로 일에 미쳐있었다고 한다.

"그런 착상을 한 김 시장이 그 아이디어를 맨 처음 상의한 것은 건설담당 부시장 차일석도 도시계획국장 주우원도 아닌 건축가 김수근이었고 그런 구상을 빠른 시일 내에 스케치해봐달라고 부탁했다.

김수근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여의도 신시가지 도시설계 등을 한 김현옥 건축 ·도시계획의 유일무이한 조언자였다.김수근은 특히 1965년 5월에 발족한 국영기업인 기술부문 종합설계회사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부사장이었고,실질적 제1인자의 자리에 있었으니,김시장 입장에서는 가장 믿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결코 말썽의 소지가 없는 편리한 조언자이기도 했다."P.193

이문장에 달린 주석에 김수근에 대한 평가가 흥미로운데,

"김수근도 훗날 나이가 들고부터는 도로 ·자동차문화에 대한 회의론자가 되었고 그와 같은 생각을 저서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 수록 나쁘다 』(공간사,1989)로 발표한 바 있지만, 유료고가도로 스케치의 의뢰를 받은 것은 겨우 36세밖에 안 되는, 좋게 말하면 신진기에,나쁘게 말하면 한 개 애송이에 불과했단 때였다.그가 얼마나 애송이었던가는 오늘날 한국 최악의 건물 중 하나인 세운상가를 설계한 것이 바로 한 해 전인 1966년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알 수가 있다.",P.193

요즘 서울 시장 보궐선거로 시끄럽다. 아, 서울 ...또 정치,권력,개발,건축이 한데 모아져서 어떤 기괴함을 발현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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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서 그림책을 보는 작은 즐거움 중 하나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품들과 캐릭터들의 옷차림 등을 자세히 보는 일에 있다. 패트리샤 폴라코의 할머니 에피소드가 담긴 책들에서는 더욱 그렇다.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할머니와 부모님 이야기 속에는 동유럽의 문화가 등장한다. 할머니의 찻잔,할머니의 조각보,할머니의 천둥 케이크 등에 등장하는 소품들과 옷들에는 동유럽의 패턴이 담겨있고 러시아정교가 담겨있다. <<천둥 케이크>>에 등장하는 할머니집에 클래식한 미국 가구들과 케이크가 올려진,오래된 버전의 코* 접시들이 빈티지하다. 그런 빈티지함 속에 이야기는 현재처럼 살아 숨쉰다. 그림책 읽는 것은 참 재밌는 일이다. 북유럽의 핀란드 숲속 이야기가 담긴 무민 시리즈도 그렇게 보면 색다른 재미가 있다.그러고보니 겨울잠을 자는 무민들은 겨울을 눈으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겨울 세상을 보며 모든 생명이 죽어버렸다고 절망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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