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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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눈에 콩깍지가 씌운 것도 아니고 번쩍 전기를 맞은 것도 아니였다. 생각이 같지도 않고 늘 언쟁을 일삼았다. 이런 우릴 보고 혹자는 "너희들 싸우다 정들겠어" 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랑이라 여겼던 감정들이 정인지, 의리인지, 아니면 연민인지 헛갈린다. 그만큼 감정을 느끼는 미세한 감각들이 더 예민해 졌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더러는 다시 사랑이 아닐까 내 감정을 고민하게 될 때도 많다.

하지만 사랑이 무엇이든 간에 서로 희로애락을 함께 하다가도 안볼듯이 격렬하게 싸우고 저항하고 다시 희희낙락하는, 점점 더 같은 곳을 바라보는 내 안의 그, 그 안의 내가 되어 가고 있다.

 

 

사랑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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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다른 존재가 우리의 내부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존재를 따라 살지 않을 수 없다.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11페이지 中

 

누구나 이상과 현실을 착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사랑이 이상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고로 나와 상대에게 서로는 이상에 그리던 매력 넘치는 남자배우나 미모와 몸매를 가진 여배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정과 애증이 함께 공존하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어느덧 내 안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하거나 점령하는 또 하나의 나 아닌 존재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이 대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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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흡사 독립선언문 낭독하듯 하고 있는 거 알아?"
사랑이 획득하거나 잃을 수 있는 라이선스의 영역으로 떨어질 때,
그러니까 운전면허증이나 워드프로세서 자격증과 진배없는 것이 될 때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는 겸손한 포즈의 고백은 '사랑이 별거냐?'는

오만한 선언이 된다."

 - 15페이지 中

 

자연스럽게 해 왔던 사소한 일들. 즉,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양이 손으로 정성스레 한 끼를 차리거나 청결을 위해 청소를 하는 것, 기념일을 꾸역꾸역 기억해 별 거 아닌 소소함으로 떼우기 등 사랑은 어느새 설레임과 흥분을 동반한 사명감을 잃게 되었다.
그 대신 나의 행위에 사소한 것이라도 생색을 내기 위한 미필적 동의를 구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내가 이 걸 하려고 몇 시간을 고생했는지 알아?" 혹은 "내가 특별히 사 온거야" 등 이미 화려한 공치사가 난무하게 된다. 사실 상대방이 원하는 건 따로 있고 특별하지도 않은 선물에 흥미를 잃었는데 말이다.

 

 

사랑은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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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자기가 사랑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아주 잘못 알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참 후에 그는 겨우 신음처럼 물었다. 사랑이, 대체 뭐예요?

- 282페이지 중

 

사실 지금도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아 살포시 주머니에 넣어 언 손을 녹여주고 좋아하는 크로아상을 기억해 사오는, 천둥같은 커다란 코골이에도 너끈히 옆에서 잠을 자는 그런것. 서로의 이야기의 종착점이 "그래, 맞아"로 떨어지는 그런게 사랑 아닌가 싶다.

 

 

지은이_이승우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중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1993년 장편소설 『생의 이면』 으로 대산문학상을, 2002년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로 동서문학상을, 2007년 단편소설 「전기수 이야기」 로 현대문학상을, 2010년 단편소설 「칼」 로 황순원문학상을, 2013년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 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그 밖에 장편소설로 「에리직톤의 초상」, 「독」, 「식물들의 사생활」, 「한낮의 시선」, 「그곳이 어디든」,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 등이 있으며 소설집으로 「신중한 사람」, 「일식에 대하여」, 「오래된 일기」, 「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심인광고」,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목련 공원」, 「미궁에 대한 추측」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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