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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비창작 -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
케네스 골드스미스 지음, 길예경.정주영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3년 11월
평점 :
[서평] 문학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전유하라!” 케네스 골드스미스가 쓴 이 책의 내용를 한 문장으로 응축하면 이와 같다. 작가는 더 이상 글을 쓰는 자가 아니며 기존의 글을 ‘선별’하여 특정 제도권에 배치하는 관리자라고 표명하면서 말이다. 전위, 아방가르드, 실험. 이는 어떤 작가들에게 씌인 누명같은 것. 메인스트림의 울타리를 견고히 지키기위해 특정 예술가의 작품을 전위나 실험의 범주에 가둬놓고 여러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다.예술과 문학에서 전위는 이제 거짓말처럼 들린다. 나는 고다르의 “나는 후위다.”라는 테제에 충실하고 싶다. 나는 전위, 그러니까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태도는 유운성의 주장처럼 예술에서 신기함 이외의 다른 어떤 가치도 찾을 수 없을 때 보이는 무기력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새로움’의 개념을 다시 정초해야 한다. 그것은 기존의 없었던 무언가가 아니라 기존에 있었으나 주류에 편입하지 못하고 은폐된 것, 혹은 기존의 것들을 재배치하여 새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창작이란 비창작이다. 창작은 기만이다. 개인의 내면성이나 문학의 진실성 따위 그저 밥벌이에 지나지 않았다. 치유와 연대, 그리고 저항과 전위, 이런 단어들의 의미는 퇴색됐다. 기표는 그대로인데 기의는 저만치 다른 곳으로 정제된 틀에 묶여버렸다.이 책에 수록된 여러 편의 논문들은 전유의 예시와 디지털 환경에서 문학의 위치를 조정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펜을 대신해 키보드로, 종이를 모니터 화면으로 전환하여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근래 한국 문학에서 주목받는 (이미 등단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다영 소설가가 스마트폰으로 소설을 집필한다는 사실은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닌 셈이다. 이미 우리부터 글을 디지털 환경에서 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텍스트의 더미가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문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태는 심히 미심쩍다. 단언컨대 문학의 미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염려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내 계좌에 찍힌 통장 잔액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