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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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2일>

*쇼코의 미소 by 최은영 - 다양한 감정이 담긴 7가지 이야기들

* 평점 : ★★★★★

* 실제 읽은 날 : 2018.01.24


한참 전에 이 책을 접했다.

그때 나와 맞지 않아서였는지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다.

책제목인 '쇼코의 미소'만 읽고 시들해져버렸었다.

몇 달이 지난 후, 서가에 꽂혀있는 '쇼코의 미소', '날 왜 안 읽어줘.. 날 읽어봐..'라며 손짓을 날리는 책..

그래, 널 읽어볼께.. 다시 도전해볼께..

처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다시 펼치니 마구 설레게 하는 이 책..

사람도 한 번 보고 알지 못하는 것처럼 책도 그렇다.

처음에는 별로였고, 마음에 안 들던 책들도 다시 보면 미치도록 예뻐지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독으로 끝나면 안됨을 이 책을 통해, 또는 다른 책들을 통해..

 

7가지의 따뜻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날 부른다.

단편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인지, 읽은 이야기를 다시 읽기도 여러 번..

'쇼코의 미소'는 이번이 두번째로 읽는 거였고, '비밀'도 '미카엘라'도..

하나하나 손으로 꼽아보니 이야기마다 다 반복하며 읽었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본능인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도..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7가지의 짧은 이야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질투, 가족애, 챙겨주던 이를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이기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끝없는 연민, 자신의 감정에 대한 부정등등..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쇼코의 미소'

 

(P.24)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사실 쇼코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다. 당장 쇼코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쇼코는 내 고용인도 아니었고,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대학 동기도 아니었고, 가까운 동네 친구도 아니었다. 일상이라는 기계를 돌리는 단순한 톱니바퀴들 속에 쇼코는 끼지 못했다. 진심으로.


(P.33)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영화판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이었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기에 억지로 썼다.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 소유와 쇼코는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했지 싶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자기과 달리 허물없이 지내는 쇼코가 얄미웠을지 모른다. 아무도 아니었던 쇼코가 지낸 그 잠깐 시간동안 일상과 다른 공기가 떠다니던 것이 불쾌했고, '작가나 감독이 될 것 같다'는 쇼코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녀에게 멋지게 해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네가 말한 대로 그 분야에서 잘 나간다고..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쇼코 역시 소유에게는 현실의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었을거다.

그렇게 둘은 닮아있어 친한 사이인 듯 친한 사이가 아닌 거였을거다.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였을지도, 그래서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소유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네 글은 좀 있어보여." , "너는 글을 잘 쓰는 것 같아."

많은 이들이 그랬다. 내 글을 보고는.. 그들에게는 지나가는 말이었겠지만, 특정한 분야의 재능이라고는 없는 나에게는 최고의 찬사였고, 그들이 말한대로 그렇게 해내고 싶었다.

나 스스로의 믿음을 갖지 못한 채 남들이 한 말에 휘둘려 그것을 '꿈'이라 칭했다.

소신이 없으니 있어보이려는 가짢은 노력만이 다였던 시절.. 

나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던 겁쟁이였음을 알아차리게 되버린 중년의 나..

노력 한 것이 없어 아쉬울 것도 없지만, 평생 그렇게 남의 시선과 말에 내 온 신경이 몰두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간다.

마치 쇼코가 지었을 것 같은 미소처럼..

가소로워서, 자만이 뚝뚝 흐르고 넘쳐서..

남의 한 말 때문이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믿고 노력해보겠다는 다짐.. 그 다짐 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젠 허영과 가식만을 집어넣은 주머니를 '꿈'이라 칭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이제 소유처럼..



 '한지와 영주'

 

(P. 164) 가끔씩 한지는 내가 '단순하다'고 말했었다. 항상 웃으면서 말했지만. 어쩐지 말에 뼈가 있다가 느껴졌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한번은 한지가 "넌 참 단순하구나"라고 말하고는 단순함은 좋은 거니까"라고 변명하듯 덧붙였었다.

나는 한지가 말한 나의 그 단순함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중략)----------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한가지 궁금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한지의 성이 무엇인지 말이다.

동성인지 이성인지..처음 읽던 그때는 왜 그리 중요했는지 알수가 없지만, 그때는 그것이 참 궁금했었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밤나들이와 사적인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들이 멀어진 이유가 이성사이의 마음이 아니라 동성의 우정같은 마음이었는지 구별하고 싶어서였나 보다.

영주에게 유일하게 마음을 주었던 한지는 '감정에 대한 솔직함'이 부족했던 영주..

갑자기 자기를 없는 사람처럼 대하는 한지에게 서운한 영주는 자신을 위함이라는 방어벽을 친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방어막을 항상 비상약처럼 옆에 챙겨둔다.

마음을 따라가기에는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이 잔인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뒤로 숨긴다. 솔직하면 지는 현실이 마주 보여서..

영주도 현실앞에서 한지를 부정했어야 했지 싶다.

한지에 느끼는 감정을 현실로 가지고 오기에는 그들은 너무나도 달랐고, 또 달랐기에.

한지도 영주의 그런 마음에 동조한 것일까? 아님 그런 영주를 감싸준 것일까?

애달프다. 맞닿은 현실이 너무 차가워서.. 애궂은 눈물이 흐른다.


 '미카엘라'

 

(P. 221) 딸이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볼 수 있던 때도 있었다. 일을 끝내고 집에 가면 "엄마!"라고 기쁘게 부르며 달려오던 딸이었다. 딸을 품에 안으면 모든 통증이 누그러졌고 다음날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났다. 세상의 누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밝고 예쁜 얼굴로 한달음에 달려와 품에 안길 것인가.

(P. 236) 여자는 얼굴만 다를 뿐, 모든 면에서 엄마를 닮아 있었다. 감색 바지는 그 물 빠진 정도까지 같았고, 꽃분홍색 티셔츠는 상표와 디자인까지 같은 것이었다. 여자가 신은 베이지색 샌들도, 여자 옆에 놓인 농구 가방도 모두 엄마의 것과 같았다.

(P. 241) 아이는 저만의 숨으로, 빛으로 여자를 지켰다. 이 세상의 어둠이 그녀에게 속사이지 못하도록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 천사들을 부모의 품으로부터 가로채갈 수는 없다. 누구도.



- 세상의 모든 엄마는 그렇게 같다. 자식 앞에서는 그 어느 엄마도 다르지 않다.

자신을 온전히 의지하고 믿어주며 사랑을 주는 자식들 앞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험한 세상에서 그들을 지켜내려고 몸부림치고, 신께 기도한다.

엄마의 눈에는 다 큰 자식들도 항상 아가로만 보여 머리 새하얗게 변하고 피부가 쪼글거려져도 자식 걱정밖에 없는거다.

자식의 힘든 하루하루가 당신으로 인해 더 힘들어지지 않도록 그들은 자식들을 배려하고 배려해준다.

자식 가진 엄마의 마음은 다 그렇다.

어렸을 적 살 부비대며 넘치도록 사랑을 퍼준 자식에게 한없이 주고만 싶은, 그래서 자식 먹이고 싶고 주고 싶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 자식들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어미새마냥 말이다.


단편소설은 자꾸 나에게 생각을 하라고 부추겼다.

열린 결말이 대부분이었으며, 단편소설을 읽을 때면 삶의 반토막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단편소설보다는 장편을 읽기가 편했고, 그 누군가의 인생을 지켜보는 마음이 들어 신이 났다.

장편보다 단편이 어렵게 느껴지는 나에게 이 짧은 듯 짧지 않은 이야기들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더불어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고 무언가를 적는다는 행위를 겻들이니 짧은 이야기는 반복되고 반복되어져 장편처럼 길어진다.

그 길어짐이 나쁘지 않다.

반복되는 이야기속에 들려오는 메아리가 그때그때 다르다.

이 책을 보며 단편이 좋아졌다.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생각할 꺼리가 많아서 단편을 꺼려했던 나와 같은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P.S 이 글을 쓴지 이주일이 넘어간다.

이토록 오래 독후감을 쓴 적이 있었는지 가물거릴만큼 기억이 안난다.

오래오래 쓰다보니 자꾸 전에 써놓은 글들을 수정하고, 내용은 자꾸 늘어난다.

본질이 바뀌는 느낌도 많다.

횡설수설하는 느낌은 더 많다.

작가의 의도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 수아씨..

뭐, 나쁘지 않다.

뭐가 되든 느낀 모든 것을 풀어놓자 생각한다. 그게 내가 쓰는 독후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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