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 수용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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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플러 수용소』 by 고호 - 내 이웃의 잔인성을 보다 *

* 평점 : ★★★★

* 실제 읽기 마친 날 : 20.07.15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실검을 확인했다. 습관적이었다.

무엇이 지금 핫한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인터넷에 뜬 기사들을 클릭하고, 댓글들을 살피며 어떤 일인지 일일히 내 시간 들여가며 살폈다.

분명 나랑 상관없는 이들의 사적인 이야기인데도 그들의 이야기를 건너건너 아는 지인인냥 자연스럽게 검색창에 새겨넣고 눈을 끌만한 제목의 기사들을 클릭했다.

연예계의 소식만이 아니라 정치계의 소식들도 자주 살펴보았더랬다.

악플러들의 이야기는 최근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의 역사는 인터넷의 발전에 발맞춰 음지에서 꾸준히 세력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세대를 뛰어넘어 초등생부터 70, 80대에 이르기까지 분포되어 있으니 가히 전성시대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듯 하다.

이렇게 세대를 아우르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데, 공인이라고 흠없이 완벽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과연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있는지, 악한 말을 쏟아내는 그대들은 정말 먼지 한 톨도 순백인건지 묻고 싶은 날이다.

p.13) 자존감을 키우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얻는 깨달음따위는 자기계발 서적을 대충 넘겨 읽는 순간에만 얼핏 존재했을 뿐이다. 그들은 저마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으면, 또 스마트폰의 키패트를 터치하는 순간, 세상 모든 사탄의 밥 수저를 빼앗는 대범함을 보였으니까.

p.38) "잊지 마. 바퀴벌레는 완전박멸은 불가능하지만 개체수를 줄일 순 있어."

p.80) 어둠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가능케 한다. 어둠 속에서 생명이 잉태되고, 어둠 속에서 힘을 비축하고, 어둠 속에서 한 뼘 성장하고, 어둠 속에서 피로를 녹이며, 또 어둠 속에서 진격한다. 그렇게 어둠은 또 다른 힘의 원천이자 샘솟는 용기이며, 동시에 악마의 시간이다.

p.94) 아빠보다 몇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 그쪽에서 먼저 어색하게 웃어 보였지만 일부러 모른 체했다. 그 웃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인자한 얼굴을 하고 뒤에선 악플을 달았을 걸 생각하니 왠지 꺼림칙해서.

p.147) "현대인들은 대체 왜 자신의 본명에 책임을 지는 삶을 회피하려는지 몰라."

지금은 의식적으로 인터넷 기사를 멀리 하려고 한다.

인터넷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의 수준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해도 궁금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기술에 자꾸만 넘어가 댓글들을 바라보게 된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어떤 잘못이나 실수가 오픈되면 굶주린 어마어마한 수의 바퀴벌레들이 삽시간에 달려나온다.

장강명의 소설 제목처럼 '댓글부대'의 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에 맞춰 활동하는 것 같은 느낌, 댓글은 수천, 수만건이 넘어가고 온전한 댓글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기사에 남겨지는 저속한 댓글들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댓글을 읽다 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화를 누구에게 풀어야 할지 난감해지기 일쑤였다.

내 일이 아니다보니 피하는 게 상책이었고, 무시하는 것이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이 책을 보며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하게 된다.

기사 몇 줄로 그들의 감정을 공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었구나, 깨닫는다.

이야기를 읽으며 피해자의 마음을 자꾸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을 100%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화제거리로 올라오는 기사 몇 줄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마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p.149) " (...) 악플러의 힘은 전적으로 그 '익명성'에서 나옵니다! 그 익명성을 아주 그냥 찌개 찌꺼기 걷어내듯 확 걷어내버려야 된단 말입니다!"

p.151) 그들은 언제나 기사제목에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죠. 속보는 기본이고요. '극단적 선택', '특종', '단독취재', '파경논란', '베일에 감춰진', '깜짝 포착'…등등. 가짜언론인들이죠.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조회 수의 노예들이죠."

p.181~185) 크게 악플을 다는 이유 세 가지 ① 자신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표출하는 케이스 ② 자신의 우월감은 확인하고 싶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겨우 ③ 비하를 통한 자존감 회복

p.204) "... 당장 명문고, 명문대 가는 것에만 급급하지. 자식들 인성을 신경 쓰지 않는 위인들이니 자식들이 그 모양 그 꼴이지. 코사인 탄젠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성이 중요하다고 인성이. 나는 말이야.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 암담해."

p.317) "사회가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관용을 베풀 때는 딱 세 가지가 동시 발현되더군요. 거지 같은 법, 거지 같은 법관, 거지 같은 논리.(...)"

지금의 상황과 너무 흡사하고 구체적인 문제를 짚어대니 르포를 읽는 건지 소설을 읽는 건지 헷갈렸다.

책이라는 감투를 쓴 사건고발같았다.

이야기속의 설정은 다소 과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소설이니까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야기의 잔혹성에서 '이야기였지,이건..'하며 정신을 차린다.

분명 과한 처벌들이었지만, 꼭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실에서도 익명성의 뒤에 숨어 악플을 해대는 이들의 처벌이 지금보다 더욱 강화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칼보다 더 힘이 센 것이 펜이다. 말보다 더 무서운 것이 글이다.

익명성을 띤 글이 얼마나 힘이 셀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뻔하다.

스스로 한 일을 아무도 모른다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과감해지고 무서울 것이 없어지니까 말이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글들이 이 사회를 갉아먹지 않게 '악플'에 대해 좀 더 엄중한 경고와 처벌이 주어지도록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아지길,

재미삼아 자판을 두드리는 이들이 사라질 수 있게 되기를,

그런 건강한 인터넷 세상이 될 수 있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p.132) 한 사람에게 폭격처럼 쏟아진 저주들이라고 생각하니 읽기도 전에 등골이 오싹했다. 대체 그녀는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p.167)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혜나 자신이 내뱉은 말들이 틀린 말은 하나 없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라 '재수 없는 말'이어서 문제지.

읽으면서 죽음을 택한 혜나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녀의 모습에 생을 달리한 많은 연예인들이 떠올려졌다.

죽음을 택하지 않고서는 살수가 없었던 그들의 인생은 꿈을 이뤄서 행복했었을까.

많은 부를 누리고,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미움도 받은 그들은 어떠한 인생이었을까.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는 그들처럼 되지 못하니 결코 그들의 마음을 알 턱이 없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긴다.

실수도 하고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화도 내고 울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로남불'이란 말은 없어야 한다.

'내가 해도 불륜, 남이 해도 불륜'이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만큼만 남에게도 너그러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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