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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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7월 16일>

* 일주일 by 김려령 - 선물 같은 일주일,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 시작된다. *

* 평점 : ★★★★★


샤방샤방한 핑크빛 책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다.

작정하고 '사랑'이라고 달려든다.

이 책에 아무런 정보없이 책을 든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의 무의식 자체에서 '사랑이야기'를 거부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단어의 허무성에 대해 깨달았고, 그것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인 시선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어서일거다.

'사랑'이란 말이 폭신폭신하고, 꿈결같고, 붕붕 떠다니는 구름같았다.

그렇게 손가락 꼼지락거리게 조바심이 났고, 머릿속에서 폭죽들이 팡팡 터지는 황홀함이 그 단어의 포장지였다.

포장지가 근사한 것처럼 '사랑'이라는 것은 멋졌고 근사했고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그런 거였다.

그러나 안개처럼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 같으나 보이지 않는 그 단어가 가진 다른 면을 나이가 한 살씩 먹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달콤한 모습 뒤에는 달콤한 것들을 대한 후의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콤함에 익숙해져 더 달콤함을 맛 봐야 하는 것도, 달콤함 때문에 몸 여기저기가 이상신호가 오는 것도, 이상의 달콤함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경제적으로 무너져버리는 것도.. 그 다양한 모습들의 한 면들이리라.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란 단어가 지닌 화려함보다는 그 뒷면을 자꾸 생각하게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사랑'이 절절한, -특히나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거부했는가 보다.

정보가 있었다면 나는 선뜻 이 책을 집지 않았으리라.

지금은 이 책을 집어든 나를 셀프칭찬해주고 있을 정도지만.

 '사랑'의 또다른 해석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보는 사람 속 터지게 착한 남녀의 모습에 사랑에만 목숨거는 이야기였다면 아마도 보는 도중 책장을 덮어버리지 않았을까.

나의 생각도 바뀌고, 연애관도 바뀌고, 결혼관도 바뀌고 있다.

나조차도 그러할진대 세상은 오죽할까.

'사랑'이라는 핑크빛 단어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보기에는 나는 너무 변했고, 너무 어른이 되어 버렸다.

어느 한 사람에게 목매지 않는 처절한 '사랑'이야기보다는 적절히 현실과 타협하며 하는 '사랑'이 나는 좋다.

그런 나의 시점에 딱 좋았던 '일주일'..

그들의 '일주일'이 현실적이라 좋았고, 꿈같아서 좋았고, 그들의 사랑하는 모습이 좋았다.

쿨하게 툭,툭 던지는 막말을 하는 도연의 모습도, 흐트럼없이 바른 유철이 하나씩 풀어지는 모습도.

그러면서 시샘 가득한 막말 하나 던진다.

"니들은 가진 것들이 많아서 그래, 일상이 헉헉댈 정도로 빡세면 그리 멋짐이 터져나오지 못할 걸...!"

다시 누군가와 사랑을 해야 한다면, 그들처럼 사랑을 할 수 있기를 사심 가득 넣어 바라본다.


(p.52) 같이 잘래요? 의문무의 악센트가 뒤가 아닌 앞에 있었다. 세상에, 그렇게 예쁘게 자자고 하면 어떡해요. 껄렁함이라고는 1퍼센트도 없는 남자가 자자고 했다. 그 단정한 섹시. 툭 건드려보고 싶었다. 도연이 그가 내민 손을 잡은 이유였다.

(p.69)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거, 그게 사랑이야. 사랑하면, 꺼져. 난 그걸 원해.

(p.69) 가세요. 갈게요. 그것이 최선이었다. 좋았던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무탈하고 행복하길 바랐다. 헤어질 때 연락처 하나 주고받지 않은 이유였다. 사랑은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날 그곳에서 불현듯. 그런 사랑 또 오겠지요. 그랬는데 이별한 이스탄불의 연인이 다시 나타났다. 누가 누구를 일부러 찾은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불쑥 나타났다.

(p.71) 괴롭고 외롭지 않은 밥벌이가 있겠는가. 금배지 달고 의전받는 생활을 하는 동안 어느새 그것들에 익숙해져 제일에 투정 부리는 오만을 저질렀다. 부지런히 살아보자. 그러다보면 문득 선물 같은 일주일이 또 오지 않겠나. 그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견디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였다.


3개월간 하루 4시간짜리 단기알바를 하는 중이다.

새로운 일에 적응되지 않은 몸이 하루가 멀다하고 아팠다.

주변에서 돈벌어 약지어 먹으라고 할 정도였으니 몸상태가 어느 정도였는지 더 설명이 필요없을거다.

그렇게 몸이 아파도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좋았다. 어디 쉬운 일이 있겠는가, 쉬우면 나까지도 순서가 오지 않았겠지.

꼴랑 3개월이지만 최선을 다해 일하자, 으쌰,으쌰.. 하며 기합을 넣는 매일이었는데,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되어가니 끝이 보이는 알바를 이토록 열심히 하면 무얼 하나, 통장을 스쳐지나가는 월급이어서 성취감 역시 바닥을 쳤다.

의욕이 떨어지니 시간은 더디 가고.

그런 나에게 위의 문장은 나의 안일함과 오만함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 부지런히 살아보자, 그러다보면 문득 선물 같은 일주일이 또 오지 않겠나.-

나도 부지런히 살아 '선물 같은 일주일'을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을 들게 만드는.

현재 주어진 나의 몫에 대해 최선을 다해 하다보면 선물 같은 일주일, 선물 같은 한 달이 올거라 믿어본다.

(p.92) 부부가 뭔데 그토록 싫음에도 함께 살아야 합니까. 도대체 부부의 연이 뭔데 단 한번의 선택으로 평생을 살라고 하십니까. 인간이 그토록 완벽한 존재입니까. 도연은 실패한 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억지의 삶을 살수는 없었다. 실패에 주저않을 것이 아니라 새 삶을 살아야 했다.

(p.116) 인영이 도연에게 모든 것의 '첫'이듯 도연도 아마 어머니에게 그러했을 것이었다. 도연은 알아서든 몰라서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누렸다. 어머니여야 안심됐다. 그러나 안심과 미안함은 별개여서 마음은 늘 무거웠다.

(p.123) 책 말고도 좋은 매체가 많은 시대죠. 책만 우아한 매체가 아닙니다. 여전히 찬반이 분분한 도서정가제, 안 좋은 경기 등도 변수가 되겠지요. 그런데 쓰는 입장에서는 환경을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독자들을 잡지 못한 저 같은 사람의 책임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p.163) 좋은 부부관계는 보기에도 참 좋다. 그러나 분별없는 부부애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예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과도한 스킨십은 불편한 것과 같다.

(p.171) 모든 일에는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인연과 운명이 따라붙는다. 그렇게 본 사람과 그렇지 않게 본 사람의 판단. 그것으로 어떤 일이 살거나 혹은 죽어도 어쩔 수 없다. 그때는 그만큼의 인연으로 결정된 그만큼의 운명이었을 테니까.

(p.213) 우연한 만남은 있어도 우연한 이별은 없다. 장점이 단점으로 단점이 더 큰 단점으로 서서히 부각됐다.

(...) 호감과 사랑을 혼동했다. 혈기왕성할 때 호감 가는 여자를 만났으니 결혼까지 해버렸다. 성급한 결정이었다. 후회로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p.219) 현재가 불행한 과거는 부질없다. 불행한 현재는 행복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p.223) 인내와 희생과 포기로도 안 되는 것이 사람이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더한 집들도 그냥 살아. 그 잔인했던 폭언들. 보편화된 불행은 불행이 아닙니까. 남들은 다 감수하는 고통을 자신만 뿌리치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린 듯했다.

(p.291) 일주일은 둘을 잡는 그물이 아니라 예민한 구역에 놓인 지뢰였다. 유철과 도연은 절대로 밟지 않았다.

(..) 그것을 정희가 겁 없이 밟았다. 징글맞게 물고 늘어지는 전처. 가만히 두었어야 했다. 그것이 이들을 평생 고개 숙이고 살게 하는 방법이었다.

- 완독 후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읽는데, 그때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던 정희의 말이 눈에 밟혔다.

그녀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알고 있었고, 문제 없을 거라는 의도가 깔린 만남.

책은 덮었는데, 나는 아직도 진실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중이다.


5년전에 '완득이'로 만났던 그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현 시대와 동일시가는 배경들과 그의 시선들.

마치 작가의 자전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자전적인 요소들이 소설속에 녹아든 것이라면 참 멋진 작가겠다 싶다.

닮고 싶을 만큼 시크하면서 유머러스하고 쿨하면서 따뜻하고....^^

그의 책은 완득이만 읽었던지라 다른 책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일주일'처럼 통통 거릴까? 아니면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까?

김려령작가의 다른 모습이 너무 좋았던 소설이다.

도연이 이 고장 특산차를 한모금 마시고 답례 인사를 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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