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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북하우스 출판사
캐럴라인 냅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명랑한 은둔자≫였다. 별 이유는 없었다. 네이버 메인 떠 있는 책 표지가 너무 예뻤거든. 그렇게 만난 캐럴라인 냅의 책은 소설처럼 쉽게 읽히진 않았지만 밀도 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욕구들≫ 또한 마찬가지로 정말 밀도 있는 문장들로 써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놓치고 싶지 않은 느낌. 밑줄을 그을까 생각하다가, 책의 절반 넘게 밑줄을 그을 것만 같아 펜을 놓아두었다.
내가 캐럴라인 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문장의 풍요로움도 있지만, 모든 것을 다 놓아두라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그 문제의 원인을 짚어 주는 책의 내용들 때문이다. ‘굶기’라는 사소한 사건을 시작으로 나의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문화적인 원인을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2003년에 쓰여진 책이지만 그 본질적인 문제는 2021년이 되어서도 바뀌질 않았구나. 그러면서도 이렇게 좋은 책이 지금이라도 출판되어서 정말 기쁜 마음이다! 특히 내가 제일 열심히 봤던 장은 2장. 왜 나는 밖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까지도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을까.
p.128 내게는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어머니의 특성보다 모성적이고 남들을 챙기던 어머니의 특성에 대한 인상이 더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무의미하게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아버지에게는 직업이, 어머니에게는 취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p. 130 여성의 영역에는 어느 정도의 제약이 딸려 있다고, 여자아이들은 생애의 첫 몇 달, 첫 몇 년부터 어머니로 대표되는 ‘여성적’ 특징들(수용, 돌봄, 타인 지향)에 대한 동일시와 아버지가 구현하는 특징들 (자율, 자기본위, 외부 세계 지향)에 대한 탈동일시를 기반으로 특정 스타일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이 제안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가정에서 허기에 관해 학습하며, 잔인하도록 엄격한 성별 구분에 의해 남자는 먹고 여자는 먹인다는 것이다.
p.133 그러니까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유전적으로 돌봄에 더 적합하고 덜 자기 본위적이며, 원래 수용하는 데 적합하게 배선되어 있고, 선천적으로 허기와 공격성을 더 적게 타고났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관찰하고서 따라 하는 것, 살면서 배우는 것이다.
역시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덤덤하게 그렇지만 풍요로운 문장으로 문제의 본질을 찾아준 캐럴라인 냅에게 감사하다.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