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요, 안중근 저학년 첫 역사 인물(위인) 8
안선모 지음, 한용욱 그림 / 풀빛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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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큰아이는 위인전을 매우 좋아한다.

큰아이덕분에 몰랐던 해외의 위인까지 알게되었다.

한국사를 좋아하더니,

안중근, 유관순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좋아해서 신청하였다.


역시나 책이 오자마자 후다닥 읽어버린 딸의 총평은.

엄마. 다른 책보다 더 자세하게 안중근을 써놔서 더 재미있었어요.

라고해 나도 안읽어 볼 수가 없었다.

같이 읽어 나누다 보니 또 서평의 시간....


 

안중근의 처음이름은 안응칠 였다고 한다.

아기의 가슴과 배에 점이 북두칠성 모양으로 나 있어서 응칠이라고 지었단다.

딸의 성도 안씨여서인지 먼 친척이라며 자부심을 느끼고 읽었다.


어린시절 응칠이는 배우지도 않은 천자문을 술술읽는 신동이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은 응칠은 명석함을 유전받은 듯했다.

 

이 시기는 이웃 나라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은 걸핏하면 국교를 위한 전쟁이 끈이질 않았다.

응칠의 아버지는 나라가 강해지려면 다른 나라와 많은 교률가 필요함을 느끼고,

70명의 학생을 뽑아 외국으로 유학을 시키며 응칠의 아버지도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응칠이도 남자 아이답게 개구쟁이에 말썽꾸러기여서

여러 장난을 치다 여기저기에서 말썽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에게도 활쏘기 총쏘기의 명포수의 기질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히 말씀하셨다.

무예를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를 닦더라도 공부를 게을리해선 안된다는 당부의 말이다...


그 말을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며 무예 또한 열심히 겸비한 응칠로 거듭나게된다.


 

응칠의 불같은 성격이 걱정이 된 아버지는 응칠의 이름을

중근이라고 자꾸 부르게 된다면 불같은 성격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름을 개명한다.


안중근의 14살때 중근을 많이 아껴주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중근은 큰 시련에 잠기게 된다.

본인이 매일 공부에 매진하지 않은 모습도 보여드리지 못하고

사냥만하며 노는 모습만 보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걸보고 후회하게된다.


깨달음을 얻은 안중근은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결심을 한다.

그 시기에 천주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퍼져나가는 사이 안중근도 천주교를 믿게된다.

공부를 시작하며 이것저것에 대해 학식이 쌓이다보니,

우리나라는 서양에 비해 너무 뒤떨어있음을 알고,

우리나라가 강해지려면 하루라도 빨리 서양의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결심하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강제로 우리나라는 일본과 을사늑약을 맺게된다.

99프로 불리한 조약이였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수작의 조약이였다.

이런 일방적인 강탈에 통애하던 안중근은 학교를 세워 더욱 백성들이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학교설립에 애를 쓴다.


 


 


모든 일에는 시련이 있기 마련,

안중근이 청나라에 가 있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에 애통하며 슬픔에 잠긴다.

하지만,

교육을통해 우리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힘을 기르겠다고 다짐하며,

그 뜻을 이루는 날까지 술은 입에 대지않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이후 안중근은 삼흥학교를 세워 40여 명의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또한,

국채 보상 운동을 참여하며 나라살리기에 앞장섭니다.


 


이런 저런 시련에 29살의 안중근은 시를 읊조리며 자신의 결정을 굳게 다짐합니다.

안중근은 독립군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갑니다.


 

그곳에서 12명의 동지들과 거사를 모의하며,

피로써 동맹을 맺는 단지 동맹을 합니다.

피를 흘려 태극기를 그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이지요.


모의계획중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그를 살해 계획에 나섭니다.

명포수였던 안중근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숨지기 않고,

이토 히로부미를 보고 총 3발의 정확히 가슴에 쏘며 명중합니다.

이로써 자신의 원수를 갚았다는 생각을 하며 옥중살이도 당당히 합니다.


재판중에도 안중근에게 불리한 재판의 계속이였지만,

결국 안중근의 죽음앞에 본인의 시신은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공동묘지에 묻어달라요청하지만,

그의 죽음 후 안중근의 주검은 뤼순땅 지금도 모를 어딘가에 묻혀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비록 안중근의 삶을 보면 이런 위인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살고 있음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어린아이들이 역사를 아는 것은 옛날이야기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이야기한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먼저 과거의 역사를 아이들에게 알리는 운동도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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