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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책제목: 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글쓴이: 캐럴라인 냅
옮긴이: 정지인
펴낸곳: 북하우스
** 해당 도서(가제본)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며, 개인적인 의견이 담긴 리뷰입니다.
여성으로 살면서 외적인 모습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특히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젊은 여성일 경우엔 타인의 시선에서 완벽히 자유롭기 힘들다.
시대가 바뀌며 미의 기준도 바뀌었다.과거 어느 시점엔 르느와르 속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처럼 풍만한 몸매가 각광받기도 했지만, 현재는 날씬을 넘어서서 깡마른 몸매를 선호한다.
보통 뚱뚱하거나 통통한 여자를 보고 예쁘다면서 칭찬하지 않고, 연예인이 체중 조절을 하지 않고 살이 찌면 입금 전 몸매라고 비하하기까지 한다. 반면 극도의 다이어트를 하여 군살 없는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는 부러움의 대상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날씬함은 하나의 장점이 되고, 자랑을 일삼는(?) 수단인 sns 상에는 날씬하고 멋진 몸매의 소유자들이 사진을 올려 칭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우월감을 만끽하기도 한다.
한편 티비방송과 유튜브에선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로 먹방을 찍으며 음식섭취에 대한 욕구를 부추기고 있고, 배달음식 문화는 발전하여 굳이 직접 요리하지 않아도 맛난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한마디로 살찌기 좋은, 과식하기 좋은 환경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식단 제한을 하며 허기를 이겨내고, 강도 높은 운동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자들은 날씬함에 성공하고 '마른 몸'의 소유자가 된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다이어트인가.
미에 대한 패러다임에 갇혀 요구되어 지는 것은 아닌가? 몸과 정신이 건강한 자기 관리는 좋지만(하지만, 꼭 날씬하고 마른 것이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약간 통통한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지 않은가?), 다이어트를 넘어서서 음식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는 '거식증' 혹은 '폭식증'같은 식사장애는 큰 문제이다.
저자 캐럴라인 냅은 이 책에서 자신의 거식증 경험에 대해, 평소의 그가 했던 방식처럼 솔직하고 거침없이 털어 놓는다. 자신을 포함하여 여성들의 욕구에 대해 분석하고,자신이 경험했던 일들과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억압된 욕구,불안,허기, 상실, 상처, 슬픔 등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들이기에 거식증의 원인을 단편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여성에게 있어 식욕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저자가 서론에 밝혔듯이, 여성들은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두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데, 그것은 욕구를 한껏 충족하는 일이 아닌 욕구를 억누르려 애쓰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만족할 수 없고,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너무 고통스럽고, 필요 이상으로 더 불안하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든다.
저자는 수년간 하루 800kcal 음식 섭취로 제한하여 매일 같은 음식을(베이글, 요거트, 사과 한개, 치즈조각,커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정확히 같은 시간에 먹었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저자가 얼마나 강박적인지 알 수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닌 수년간 지속해왔으며 그결과 체중이 37kg까지 빠져 뼈만 앙상한 신체가 된다. 음식과의 관계가 엉망진창으로 바뀌는 와중에도, 식욕과 허기에 굴복하지 않은 자신이 승리했다고 쾌감을 느꼈다. 주변사람이 음식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우월감마저 느꼈다. 식욕을 경험한다는 것은 곧 불안을 경험하는 것이라 인지했으며, 그것은 일종의 부담이며 위험이라 여겼다. 허기에 굴복하는 것, 조금이라도 허용을 한다면 결국 대가를 치뤄야 한다고 느꼈고, 그렇기에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했던 것이다.
저자는 어머니와의 관계속에서 거식증의 원인을 찾아보았고(어머니가 누리지 못한 것을 나만 누린다는 죄책감으로 벌하기,혹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분노, 유년기의 상실 혹은 허기, 상처 등), 여성의 욕구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억압되어 온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그리고 거식증을 대체할 만한 마땅한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무언가 빠져 있는 불완전함, 굶주리고 공포에 질려 있는 것을 알리는 방법이 곧 굶기였던 것이다.
지나친 소식, 거식증에서 지나친 폭음, 폭풍쇼핑으로 이어졌지만, 마침내 '조정'이라는 스포츠를 계기로 극복해낸다. 노를 젓는 신체 동작을 통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만족감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빈 곳을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과의 연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이다. 그리고, 희망을 향해 헤엄쳤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p241)
그것은 조화롭게 어우러진, 강하고 온전한 하나로서의 몸, 마음과 연결되어 있고 마음에 반응하는 몸, 기거하기에 훌륭한 장소인 몸이었다.
p304)
깎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것. 굶기가 내가 나의 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스컬링은 내가 내 몸과 함께 하는 일이다.
덧) 아무리 견디기 힘든 고통일지라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욕구 충족을 위한 시작일듯.
p47)
내면세계와 외부세계 사이의 암묵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욕구에 관한 이야기다. 시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자유가 주어질 때 함께 솟아나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자가 성별과 여성성에 관한 깊고 견고하게 뿌리 박힌 오래된 규칙들을 시험할 때 솟아나는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다. 자아와 문화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전히 여성의 권력에 대해 심히 양가적 태도를 취하는 세계, 욕구와 수치심을 똑같은 정도로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세계 안에서 여성의 욕망을 속박하고 있던 고삐가 덜컥 풀어졌을 때 생기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갈수록 더 시각에 추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세계,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는 세계, 여성의 욕망에 관한 관념이 너무나 협소한 틀 안에 갇혀 있는 세계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자신의 욕망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한 이야기다.
p50)
나에게나 많은 여성들에게나 욕구들 둘러싼 도전은 일생 계속되면서 인생을 결정할 것이다.
이제 나에게 좋은 하루란 고립과 완벽주의와 자기 징벌과 관련된 내 최악의 충동들에 성공적으로 저항했음을 의미하고, 그 대신 재미와 생산성과 연결성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찾았음을 의미한다. 좋은 날들로 향하는 내 길을 찾기 위해, 더욱 힘을 북돋는 방식으로 안녕을 정의하기 위해 나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자주 고통을 참아가며 르누아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기어갔다. 충족될 자유를 향한 16년간의 느린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