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 1337~1453 - 중세의 역사를 바꾼 영국-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이야기
데즈먼드 수어드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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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백년전쟁에 관해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놀라웠지만, 이 책이 백년전쟁에 관한 국내 첫 역사서란 점에 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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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류 - 도덕은 진화의 산물인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오준호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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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늘 궁금했다. 문명, 예의 등으로 포장해도 인간의 본성은 그 정도밖에는 안 되는 건지... 심한 무기력증에 글자 한 자 보는 것도 귀찮던 상황에서 만난 한 영장류학자의 책에서 다른 세계를 보게 되었다. 그 세계는 내 경험치를 넘어선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단지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조심스레 다시 인간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준 책. 세월호, 팔레스타인에서 악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혹 나처럼 작은 희망을 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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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조효제 옮김, 이부록 그림, 안지미 아트디렉터 / 프롬나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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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올해의 인권 책> <2012 디자인이 좋은 책> 수상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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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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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마음이 복잡하다. 해명되지 않고 있는 의문들.
이해력이 떨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먼저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내가 본 게 뭐지? 내가 책을 이해하기나 한 걸까.
재밌게 읽었던 책들만큼이나 술술 잘 읽혔던 책이기에 그 당혹스러움은 더했다. 책을 다 읽었는데도 그 줄기가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처음에는 <허삼관 매혈기>, <O&A>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때로 웃게 만들었다가 때로 울게 만들고 그러다 역사(현실)를 만나게 하는 방식이 사뭇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러다 어느 순간 길을 잃은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마치 미로에 갇힌 기분이다.
<깊이에의 강요>를 읽고 난 뒤 가졌던 느낌과 비슷한데, 평론가가 깊이를 강요했다는 건지, 작가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는 건지, 그 두 가지가 중첩됐다는 건지... 모호하기만 했던 그때의 기분....(아직도 난 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책 제목이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인 점도 이해가 안 갔다. 짧은 것은 알겠지만 왜 ‘놀라운’ 삶이라고 했는지.... 오스카 와오의 비중이 제목에 비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벨리시아, 누나 롤라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아벨라르의 이야기에 비해 오히려 무게감에서 떨어진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런데도 책 제목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왜지? 

사실 이러한 의문은 불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읽는 방법과 그로부터 받는 느낌이야 사람마다 다 다른 법이고, 그런 점에서 그냥 자신이 느낀 대로 이해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아이러니하지만 책이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난 작가의 의도가 정말 궁금했다. 그는 왜 이 책을 쓴 거지? 그것도 자신의 첫 책으로? 저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을 보여주기 위해? 도미니카의 근현대사를 고발하기 위해? 진정한 사랑이 뭔지 보여주기 위해?... 아님 이 모든 것을 종합한 뭔가가 있는 건가?
뭔가 잡힐 듯하다가 어느 순간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생각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뭐지뭐지뭐지뭐지뭐지....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책의 제목을 작가가 직접 지은 건지 궁금해졌다.

작가가 책 제목을 직접 지었을지 모른다는 가정을 하자 한순간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순전히 내 착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책이 독자 손에 전해지는 순간 일정 부분 작가 손을 떠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 나름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앞서 말했듯 난 오스카 와오의 ‘놀라운’ 삶이라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왜 놀랍다는 거지? 짧은 삶이 안타깝긴 했지만 놀랍다고 느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해서 오스카의 삶이 놀라워지려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든 생각.
만일 오스카의 삶이 단지 오스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누나, 그의 어머니, 그의 할아버지, 그의 고모 그리고 그의 조상들의 삶이, 역사가, 한데 모아진 것이라면.
오스카가 있기 전에 롤라가 있었고, 롤라가 있기 전에 벨리시아가 있었고, 벨리시아가 있기 전에 그녀의 언니들과 엄마, 아버지, 고모가 있었다. 오스카는 오롯이 오스카 혼자가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스카는 도미니카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놀라운’ 삶이라고 한다 해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오스카가 도미니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할아버지 아벨라르, 어머니 벨리시아, 아들 오스카에게 내려진 ‘비극적인 사랑’이다. 공통분모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아 보이는 이 3대의 사랑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이들의 사랑에 비이성적 폭력이 뒤따랐다는 것이다. 발정난 독재자로부터 딸을 지키려 했던 아벨라르, 사랑에 대한 소박한 흑심(?)을 지녔던 벨리시아, 평생에 단 한 번의 사랑을 가졌던 오스카에게 돌아온 것은 축복이 아닌 죽음보다 깊은 폭력이었다. 그리고 그 폭력은 순화되지 않은 야만적 국가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자행된 것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에서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야만적 사회의 일상화된 폭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할아버지, 어머니를 거친 오스카의 삶은 도미니카가 걸어온 역사의 줄기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작가는 도미니카의 근현대사와 오스카네 가족사를 함께 엮으며 가장 큰 단위와 가장 작은 단위를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러자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겨났다. 그럼 왜 ‘짧은 삶’이지?

직관처럼 어떤 생각이 지나갔다. 작가는,
끝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푸쿠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오스카의 죽음을 통해 영원히 푸쿠와 단절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만약이지만 어쩌면, 내가 기대하는 만큼 이시스가 똑똑하고 용감하다면 아이는 우리가 겪고 배운 모든 것을 소화하고 고유의 통찰력을 보태 이 비극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게 바로 사기가 충천한 날들이면 내가 소망하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것이다.”(385쪽) 

 

여기까지 써놓고 한 달여라는 시간이 흘렀다.

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어 마무리를 짓지 못했는데, 이런저런 일들로 도통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 사이, 용산에선 무고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고, 푸쿠는 단지 도미니카에만 존재하는 악령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겨났고, 죽은 뒤 성자가 된 사람도 생겼다.

푸쿠가 한창 이 땅에서 위세를 떨칠 때 퇴마사 역할을 했던 그 성자는 마지막 순간 조용히 사랑만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보며 새삼 궁금해진 것은,

성자는 이 땅에서 푸쿠가 사라졌다고 믿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가 퇴마 활동을 그만두었던 건 이 땅에서 더 이상 푸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일까.

성자의 생각이 어땠든, 그랬으면 좋겠다. 더 이상 푸쿠의 악령이 이 땅에서, 아니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발흥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주술의 힘이든 그 무엇의 힘에 의한 것이든 상관없이.

하지만 불길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용산에서의 그것이 푸쿠의 짓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2009년에 말이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이 책의 미덕이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책이라는 것이 놀라운 우연으로 그것을 접한 자의 무언가를 각성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최소 한 사람 이상에게는 성공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설령 두려움에 관한 것일지라도. 

 

 

+이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사이 또 다른 흥미로운 책을 한 권 읽게 되었다. 천명관의 <고래>. 굳이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맨 처음 든 생각이 들으면 얼토당토않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노 디아스는 혹 알기 어려운 경위로 <고래>를 읽었던 것이 아닐까. <고래>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쓴 것은 아닐까.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과 <고래>는 그만큼 내게 많은 부분에서 흡사한 느낌을 주었다. 만일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읽은 이라면 <고래>의 일독도 권해본다. 그 반대의 경우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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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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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내게 한 권의 책은 정보 이상이다.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 책은 한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내 생각, 대개는 엉뚱한 생각이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로 작용하곤 한다. 이 책, <뮤지코필리아> 역시 내게 남다른 느낌을 갖게 한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는 남들에게는 쉽게 털어놓지 못할 공포 같은 것이 있었다. 노부모와 곧 태어날 아이...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불쑥불쑥 찾아드는 생각이, 혹여라도, 정말 혹여라도 두 분 중 어떤 분이라도 치매나 그와 유사한 뇌질환이 찾아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였다.
똥오줌 못 가리던 어린 자식을 당신들의 모든 걸 바쳐가며 옥이야 금이야 길러주셨음에도 자식인 난 부모의 다른 모습을 상상하면, 공포감밖에는 느끼지 못했다. 간혹 친한 지인들에게 “만일 내 부모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난 자신 없어... 수발들 자신도 없고.. 열심히 돈 벌래. 그 돈으로 간병인 불러서 부모 수발들게 할래....” 같은 이야기나 할 뿐....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해서도 부모님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동갑인 아내와 결혼해 축복처럼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찾은 병원에서 담당의는 노산의 위험을 이야기하며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지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와 함께 정밀 검사를 권유했다. 오직 축복만을 받고 태어나야 할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듣는 순간, 처음에는 의사에 대한 노여움으로 마음이 가득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정밀 검사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며 아이가 잘못되어 태어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결국 며칠간의 고민은 아이를 믿고 정밀 검사를 포기하는 결정으로 정리되었지만, 솔직히 그 어떤 가능성도 열어놓은 채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뮤지코필리아>에는 수많은 뇌질환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치매를 앓는 노인이나 뇌질환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의 뇌를 향한 한 노인의 40여년 열정이 담긴 연구 성과가 이 책에 오롯이 드러난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이 준 선물은 그러한 연구 성과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속 공포가 치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사그라드는 것을 느낀 점이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내게 뇌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 역시도 존엄성을 간직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일깨워주었다. 그의 환자들을 향한 따듯한 시선은, 내게 이전과는 달라 보이는 부모일지라도, 자식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여전히 존엄한 인간이며, 나를 위해 당신들의 살점을 내어주었던 그분들과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주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 그 행위가 물 밑에 가라앉아 있는 거대한 삶 통째가 아닌 빙산의 일각을 읽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해도, <뮤지코필리아>를 읽으며 한 노인의 인간을 향한 따듯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으로, 그 시선이 한 남자의 어찌해볼 수 없던 공포감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끔 해주었다는 것으로,
그를 알게 된 느낌이다....
고마워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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