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카펫처럼 촤르륵 깔린 길을 사그락 사그락 걸으며,
트렌치 코트의 옷깃을 세우며,
선선하게 부는 바람으로 긴 머리를 날리며,
외롭고 쓸쓸한 가을여인이 되어 이 계절을 즐기고 있습니다. ^^
찰라의 시간처럼 짧아 더욱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가을 감상에 빠져있긴 하지만, 그래도 짬짬히 책은 읽고 있답니다.
책 리뷰는 이번에도 생물학 책으로 시작 할께요.
48. "건강 불평등", 리처드 윌킨슨 저, 손한경 역, 이음, 2011
다윈의 대답 시리즈 7번째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한 사회의 건강수준이 사회의 불평등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국가에 빈부격차가 크면 클수록 국민들의 건강수준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절대소득이나 의료서비스 외에도 소득불평등과 사회적 격차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겠지요.
위계질서가 강한 사회에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고, 사회적 비교는 사회적 불안을 낳고, 무시와 불평등은 폭력을 낳게 되지요.
예전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스트레스가 생존을 위한 기제로 작용했지만, 현대의 불평등 사회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그 성격이 만성적인 것으로서, 바로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결국 나 개인의 건강수준도 한 사회의 평등수준과 연관되어 있는데, 평등사회를 이루는 일이 너무 거창하고 요원한 듯하여, 평등사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이 책의 결론이 좀 씁쓸하기도 하네요.
국민의료 정책에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까요? ㅠㅠ
49. "생명의 떠오름", 존 메이너드 스미스 저, 조세형 역, 이음, 2011
다윈의 대답 시리즈 중 여덟 번째로 마지막 책입니다.
수정란이 성체로 변해가는 과정인 “발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라, 사실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완전히 생소한 분야라 아 이건 뭥미? 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어요,ㅠㅠ
그래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를 말하라면, 생물의 발생 시 유전자가 사전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아니면 발생과정 중 자기조직화가 일어나는가? 즉, 발생의 환원주의와 전일주의 시각의 대립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저자는 이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 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두 가지 통합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그러나 한쪽 맥락에서는 환원론자가 되고, 다른 맥락에서는 전일론자가 될만한 여지가 충분하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어주고 계십니다.
아... 어려운 책이었어요.
발생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하기에는 내 뒤에 산적한 일들이 한가득!!!
세상엔 알고 싶은 게 너무 많고, 시간은 없고. ㅠㅠ
50.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이윤기 역, 열린책들, 2009
한 20년 전쯤에도 이 책을 읽었었죠.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큰 감흥은 없고 제 머릿속엔 과부의 살해장면과 오르탕스 부인이 죽어가는 장면만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아마도 주인공이 여성들을 주체적 인간이 아닌 하나의 객체로 대하는 느낌이 들어서 거부감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읽었던 “삶을 바꾸는 책읽기”에서 이 책을 인용한 것 때문에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입 할까 고민하던 차에, 때 마침 친구가 이 책을 빌려주었답니다.
20년이란 세월이 흘려 다시 읽고 보니 이제야 작가가 하고픈 말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자기인생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지요.
바로 자기인생이란 말입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내세의 삶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바로 지금”의 그런 인생이더란 말입니다.
바로 조르바란 인간이 매사에 성실하게, 자기 양심에 충실하게, 삶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작가인 화자는 결국 조르바처럼 살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화자도 결국 자신의 삶을 자기의 방식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는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겁니다.
삶은 그렇게 짧고 안타까운 것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51.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저, 창비, 2011
알고 보면 되게 슬픈 내용인데, 무척이나 덤덤하게 쓰고 있네요.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어버린 아들의 이야기.
부모가 17살에 낳은 아들인 주인공은, 조로증에 걸려 현재 나이 17세에 80세의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인 소년은 오히려 80세의 눈으로 자기 부모님의 사랑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며, 자신의 삶을 마칩니다.
젊은이의 사랑은 그 어떠한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원리이며,
누군가가 아픈 것이 어떠한 경고의 메시지일 리는 없는 것입니다.
아픈이들의 삶도 아름다운 삶입니다.
푸르디 푸른 청소년들의 사랑도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역시 소설가들은 대단해요.
아 부러워요. 삶에 대한 이러한 통찰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요...
이제 이 계절도 곧 지나갈 거 같습니다.
다음 주부터 이곳은 겨울시간(Winterzeit)에 들어갑니다.
자칫 냉랭해질 수 있는 마음을 따뜻한 독서로 덥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