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이곳엔 이미 겨울이 다가오려는지,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손가락이 잘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차갑습니다. 호~
지난 기간 동안엔 독서가 저를 참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책 내용들이 어찌나 내 머리 용량을 초과하는지...ㅠㅠ
38. "Müdigkeitsgesellschaft", Byung-Chul Han, Matthes & Seitz Berlin, 2010
독일에 사시는 한병철 교수의 저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피로사회”로 번역된 책이죠.
사실을 번역본으로 보고 싶었는데, 책이 얇은지라 원본읽기를 한번 시도해 보았습니다.
(이 책을 선물로 주신 내 친구에게 감사!)
휴~ 그런데 철학책은 어렵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더욱 확고하게 해 주었죠.
읽기가 어려워서 하루에 한 챕터씩만 읽었습니다.
그래도 다 읽고 난 후 결론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주었습니다.
피로라는 것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다가오지만, 알고 보면 인간이 피로하기 때문에 휴식하고 잠을 자는 것이겠죠. 그것이 또 회복과 새로운 영감을 주고요.
피로사회라는 것은 현대의 성과사회에 대한 대안으로서 “피로야 가라~” 하는 것이 아니라 “피로하니 쉬자~” 라는 것으로, 그것이 개인차원이 아니라 전 사회적 차원에서 실행되는 것이 바로 “피로사회”라 할 수 있겠죠.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철학자와 문학작품이 언급이 되는데요. 거기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읽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보들리야르, 푸코, 아렌트, 아감벤, 니체, 멜빌, 한트케에 이르기까지...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겐 결코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는...
유일하게 읽었던 것이 한나 아렌드의 “인간의 조건”에 실린 “활동적인 삶”이었는데, 그나마도 이 책에 인용되어 해석된 부분은 잘 이해가 안 되더라는... ㅠㅠ
그런데 니체와 멜빌의 “바틀비”는 꼭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결론은 “쉬자” 나도 쉬고. 너도 쉬고.. 우리 모두 쉬자.
39. "콰이어트", 수전 케인 저, 김우열 역, 알에이치코리아, 2012
나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책이었습니다.
사실 활기차게 살아야만 하는 게 너무 버겁습니다. 저는요...
집에서 조용히 음악도 듣지 않고 완전한 침묵 속에 있는 게 좋은데, 그럼 안 된다고 나가야 된다고 사람들을 만나야 된다고 그러다가 우울증에 걸린다고 하지요.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하네요.
이 책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가진 재능과 에너지가 외향적인 사회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고, 내향적인 이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사회적 환경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내향적인 우리 아드님 때문에 사실 걱정이 많았는데, 이런 아이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많이 들어있어서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 책에 대한 반향이 큰 모양이예요. 얼마 전 슈피겔 지에서도 “내향적인 사람들이 왜 평가절하되었는가?”라는 타이틀을 내 보낸 적도 있었죠.
하여튼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것만 중요시하는 사회가 아니라 조용하고 사색적인 것도 중요시 하는 사회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이것은 위에 읽은 “피로사회”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40. "신데렐라의 진실", 마틴 데일리, 마고 윌슨 저, 주일우 역, 이음, 2011
진화생물학 관련 책을 읽다보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참 섬뜩할 정도로 우리의 이상과는 멀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는데요, 이 책은 그 정점을 찍는 거 같습니다.
책의 내용은 부모가 다 친부모일 경우와, 한명이 친부모가 아닐 경우 즉, 계부 또는 계모가 아이들을 대하는 양육태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미국과 캐나다 등의 아동학대 사례를 비교하여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지지 않은 자식에게는 투자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최근 가족 구성이 점점 복잡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계부나 계모를 경험할 확률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정의 자녀가 모두 학대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고, 많은 계부나 계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지만, 이것을 당연시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 타인과 잘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은 부모와 자녀 간에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친부모 자녀 간 작동하는 매커니즘과는 다른 성격이겠죠.
그리고 문제 발생의 여지가 없다고 쉬쉬할 게 아니라 바로 이 점을 이해하고, 사회정책에 반영하는 게 중요한 것이겠죠.
생물학은 정말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ㅠㅠ

41. "마의 산 (상)", 토마스 만 저, 홍성광 역, 을유문화사, 2008
42. "마의 산 (하)", 토마스 만 저, 홍성광 역, 을유문화사, 2008
제목 그대로 마의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고 눈보라 속을 헤매다 강풍에 휩쓸려 겨우 마을로 내려온 느낌입니다.
주인공 한스 카스도르프는 요양 중인 사촌을 문병할 겸 알프스 고지대의 요양원에 방문을 합니다. 3주간 방문 예정 이었으나 그도 환자로 규정되고 산 위 요양원에서 7년을 지내게 됩니다.
그 사이 너무나 평범했던 청년 카스토르프는 열이 떨어지지 않는 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하고 3명의 멘토들에게 가르침을 받아 교양과 자의식을 갖게 됩니다. 말하자면 평범한 젊은이에서 무척이나 똑똑한 젊은이로 변화해갑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도 떠나도 자신의 멘토 중 2명이 죽고, 한 명은 병들고 제1차 세계대전 마저 발발하게 되죠. 그리고 허무하게도 7년의 긴긴 시간을 뒤로 한 채 그는 전장 속에서 사라집니다.
저는 이것을 허무 소설을 초절정이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한스 카스토르프의 변화하는 모습에 감정이입하며 그 읽기 힘든 책장을 넘기며 읽었는데, 마지막 갑자기 그는 사라집니다. 우리는 그가 전쟁에서 죽었는지 살아 귀환했는지 모릅니다.
알프스 고산지대 요양원의 삶은 마치 천상의 삶 인양, 시간개념도 없고, 풍족한 식사와 여유있는 휴식, 교양강좌와 음악회, 그리고 정신고양을 위한 제한 없는 실험이 가능하지만 결국 사람의 삶이란 지상에 발을 대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신권으로 지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 믿는 자와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를 부르짖는 자는 매일 매일 논쟁을 벌이지만, 결국 한 명은 죽고 한명은 침상에 눕게 되며, 왕 같은 카리스마를 지녔던 한 인물도 사랑 때문에 자살을 하게 되고, 군인정신이 투철했던 사촌은 자신의 소신에 따라 요양원의 평온한 생활보다는 군인의 삶을 살고자 하다가 죽음을 맞죠.
천상과도 같은 요양원의 삶도 결국은 지상세계와 그닥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도 흐릿해지게 됩니다.
허무하고 허무하고 허무합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죽음으로 귀결되니까요.
그래도 작가는 이렇게 주장하는 거 같습니다. 죽음이 늘 우리 삶의 뒤편에 있기 때문에, 삶이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이라고요.
책을 더 곱씹어 생각하고 리뷰를 쓰고 싶은 욕심도 있으나,
어찌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다.
100권 프로젝트 동안은 첫 프로젝트니까 이렇게 간단 허접 리뷰로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잘 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일단은 끝까지 하는 게 목표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