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의 최대관심사인 진화론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
지난 생일 선물로 책을 스무권 선물 받았습니다.
대부분이 진화론 관련 책인데요... 열심히 읽어볼랍니다.
저에게 생물학은 어떤 철학책이나 인문학 책들보다 인간에 대한 통찰을 많이 주거든요.
33.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리처드 도킨스 외 저, 존 브록만 편집, 김명주 역, 바다출판사, 2011
한동안 진화론의 대안으로 지적 설계론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죠.
지난 2005년 미국 도버교육청에서 지적 설계론을 가르치려던 움직임이 다행히도 연방법원에 의해 중단된 사례가 있습니다.
지적 설계론을 가르쳐야 된다고 주장하는 측은 이것이 과학이론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창조론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론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문명이 생기고 문자가 생겨 창조의 이야기가 기록된 이래, 신에 의한 창조론은 그동안 역사를 거쳐 간 수 많은 인간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삶의 의미를 주었습니다.
거기에 굳이 “과학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야 될 필요는 없는 거죠.
그리고 진화론은 이미 과학계에서는 하나의 사실로 인정받는 확고한 이론입니다.
이 책은 16명의 과학자들이 지적 설계론이 왜 과학이 아닌지를 반론하고, 진화론이 얼마나 정확한 이론인가를 증명합니다.
물리학자가 우주도 진화한다고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그야말로 놀라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죠.
16개의 에세이를 제가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고,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이 생겼습니다. ^^
자, 아래의 4권은 모두 “다윈의 대답”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총 8권인데요.
일단 4권 먼저 읽고 정리해 봅니다.
34. "호모 심비우스", 최재천 저, 이음, 2011
‘호모 심비우스’란 공생인, 즉 함께 사는 인간을 뜻하는 말입니다.
생물학자가 오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진화론 하면 경쟁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생물들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을 합니다. 종내 경쟁보다는 종간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자세히 관찰하면 이 경우에도 종별로 생활구역을 나누어 조절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포식동물을 가해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포식동물을 제거하게 되면, 다른 동물들의 생존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즉, 생태학적으로 포식자와 피식자의 존재는 종의 개체 수 조절에도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로 생태계 전체 종의 균형에 기여를 한다는 거죠.
전체 생물권을 보면 식물과 곤충이 자치하는 비율이 엄청 많다고 합니다. 식물과 곤충간의 공생전략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죠. 지구에서 이들이 이렇게 번영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공생”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별은 전례 없는 환경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 별에서 우리 인간이 계속해서 혼자 살겠다고 이기적으로 굴다가는 인류의 파멸 뿐 아니라 전 생물의 생존도 위협할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인류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재고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전체 생물권의 한 종으로써 우리도 다른 생물들과 공생하는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하겠지요.
35. "다윈주의 좌파", 피터 싱어 저, 최정규 역, 이음, 2011
그동안 다윈주의는 우파가 자연의 생존경쟁 논리를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다윈주의가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에, 좌파도 우파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간 다윈주의 우파가 있어왔으므로, 당연히 다윈주의 좌파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윈주의 좌파는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전통적인 좌파가 아니라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음을 수용하고 그 본성에 기반한 사회를 예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어떤 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라는 것을 예상해야 하며 이에 따라 기존에 좌파가 가졌던 약자와 빈자 편에 서는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협조를 촉진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경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시각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인간 본성을 연구하고, 인간 전체를 위한 방향으로 사회적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죠.
이 책이 일단 문제제기를 했으므로, 향후 좌파에 다윈주의를 결합하는 새로운 연구와 시도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6. "에덴의 종말", 콜린 텃지 저, 김상인 역, 이음, 2011
약 1만 년 전에 농업이 확산되면서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고, 이후 우리 인류는 지구위에 우뚝 서게 되었죠.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미 4만 년 전부터 인간이 수렵 채집과 병행하여 동식물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라 인구가 늘어나고, 대량 살육으로 홍적세의 대규모 멸종이 발생하고, 빙하기가 끝나면서 대륙의 해수면 상승으로 토지가 줄어들면서, 먹을 것은 줄고 인구수는 늘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농경생활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이것이 인류에게 축복이었을까 아니면 생태계에게 주어진 저주의 시작이었을까요?
어쩌면 인류는 생태계를 파괴하기 시작한 대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처럼 평생을 땀을 흘리는 고역을 하게 된 것일 수도 있지요.
예전에 밭일을 하면서 농사라는 게 친자연적인 행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런 고민을 다시 한 번 심각하게 해 보게 되네요.
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수렵 채집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ㅠㅠ
37. "유리천장의 비밀", 킹즐리 브라운 저, 강호정 역, 이음, 2011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선천적인 차이가 있을까요? 이 저자의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타고난 차이가 있고, 하는 일도 기능적으로 분리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 남녀 간 타고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별에 따른 기능적 차이가 임금차이나 일할 기회의 차이와 연관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업무환경에서 꼭 경쟁, 위험감수 등의 남성적 특성만 부각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는 업무에서도 사려깊음과 돌봄의 여성적인 가치가 중요하게 부각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네요.
하여튼 저자의 의견에 대해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는데에는 동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리천장을 여성들 스스로 깨뜨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금씩 저만의 설을 풀어볼까 합니다. ^^
음... 어쨌건 오늘은 여기까지만요.
읽은 책이 몇 권 더 있는데, 마저 쓰기가 버겁네요.
위의 책들도 읽은 지 이미 한참 돼서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다시 생각해서 쓰려니 너무 힘드네요.
담 부터는 읽자마자 바로 바로 메모하는 훈련을 해야겠어요. ^^
이상 대충 대충 얼렁 뚱땅 리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