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게 리뷰를 쓰는 건데도 막상 책을 읽고 뭔가를 적는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네요.
그래도 계획세운지 이제 겨우 한 달인데, 벌써 지쳐버리면 안되겠죠?
자 그럼 지난 며칠간 읽은 책들 정리 들어갑니다.
10. "쟈디그, 깡디드", 볼테르 저, 이형식 역,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1
뭔가 심오하고 골치 아픈 얘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책을 열었는데, 이건 완전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우선 '쟈디그'는, 바빌론 왕국에 살던 철학자 쟈디그가 자신이 하는 행동마다 운명의 장난에 엮어 갖은 고난을 겪지만, 그의 고귀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바빌론의 아름다운 왕비와 결혼하여 왕위를 차지한다는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쟈디그' 보다는 '깡디드'가 무척 흥미로웠는데요,
독일의 성에서 자란 깡디드가 그 성의 주인의 딸인 뀌네꽁드를 사랑한 죄로 그 성에서 쫓겨난 이후, 오로지 뀌네꽁드를 만나는 것만을 바라며 유럽 여러 나라를 거치고 남아메리카에서 유토피아인 엘도라도를 거쳐 다시 유럽의 이탈리아에 돌아왔다가 터키에 정착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고난을 다 겪으면서도, 모든 것은 다 최선의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지독한 낙관주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자신 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누가 누가 더 불행한가 내기를 하듯, 불행의 끝을 경험하고 있는데도 말예요.
결국 문제는 그의 낙관주의가 그가 겪는 상황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볼테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신이 만드신 세상은 늘 아름다우며, 지금의 어려운 상황은 다 최선의 상태를 위한 것이라는, 지금에도 들을 수 있는 성직자들의 관용어구와도 같은, 종교적 진통제 처방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깡디드는 자신의 유일한 목표였던, 사랑했었던(!) 뀌네꽁드와 해후하게 되지만, 그녀는 이미 지독한 고생으로 아름다움을 잃은 상태로, 깡디드는 그녀에 대한 애정을 잃고 결혼을 주춤할 정도가 되지요. 그리고 깡디드와 함께 이방 땅에 남게 된 이들은 결국 가진 것 없이 그날 그날을 그저 살면서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어쩜 실재적 삶이란, 나와 큰 상관없는 최선의 상태를 위해 배경이나 그림자가 되어도 무방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 대해서만큼은 주체적으로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신이 원하는 삶 역시 자신이 만드신 인간이 최선의 상태를 위해 수동적으로 사는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삶일 것입니다.
11.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고혜경 저, 한겨레출판, 2010
신화나 창조설화 같은 것은 칼 융이 말한대로, 인류가 세대를 거쳐가면서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있는 ‘원형’으로,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겠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세계의 신화에 좀 관심이 있었는데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제주도 창조설화인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그것도 주인공이 여신인 할망이라 더 반가웠지요. ^^
거대한 설문대할망은 길쌈하고 밥 짓는 친근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속옷을 지어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놔주겠다고 인간들과 협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녀의 설사가 360개의 오름을 만들었고, 그녀의 오줌은 바다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뜬금없이 중간에 설문대 하루방이 등장해서 그의 남근으로 바다를 휘휘 젓자 고기들이 도망을 가는데, 할망이 그 고기들을 다 하문으로 빨아올렸다는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할망이 자신의 큰 키를 자랑하다가, 자신의 큰 키만 믿고 한라산 물장오리에 갔다가 물장오리가 너무 깊어 그만 빠져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여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신화라니 갑자기 허무해 지긴 하지만, 그 옛날 제주민들이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의식이, 신도 죽는데, 인간은 당연히 죽는 것으로서 죽음을 겸허히 수용했던 것은 아닐까요? 죽음이란 패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니까 말이예요.
어쨌건 제주도에 가보면 여기저기 돌하루방은 많은 반면, 창조신화의 주인공인 할망의 상은 없잖아요?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책 중간에 보면 제주도의 형상 자체가 할망이 누워자는 모습이라고 하네요. 즉, 설문대할망은 바로 제주도 그 자체이며, 할망이 제주도의 모든 것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할망의 모습을 따로 조각해서 세워 놓는 게 민망할 정도로요.
하여튼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설문대할망 신화에 나오는 길쌈, 부엌, 다리, 남근, 신의 죽음 등에 대해 다른 지역의 신화들과 비교하며 고찰하고 있는데, 세계 각 지역의 신화가 무척 유사하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설문대할망이 마고할미라고도 불린다고 하던데, 마고할미에 관한 것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12. "주홍글자", 너새니얼 호손 저, 양석원 역, 을유문화사, 2011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이제야 읽었을까 후회가 밀려들 정도였어요.^^
책의 스토리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은 기억이 없더라구요.
이 책은 1846년-49년까지 저자인 호손이 세관에서 일할 때, 그가 겪은 무료한 인간군상과 진부한 공직생활이 서술되다가, 그가 우연히 주홍글자를 발견하고 다시 소설을 쓰게 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17세기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간음죄를 지어 가슴에 주홍글자 A를 달고 살아야 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죠.
이 이야기가 재밌는 이유는 4명의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인데요.
주인공인 헤스터와 딤스데일은 너무나도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헤스터는 가슴에 주홍글자를 달고 주민들에게 외면당하며, 어린 딸을 키우지만, 그 특유의 강인하면서도 자애로운 성격과 그녀만의 손재주로 경외심마저 갖게 하는 캐릭터지요.
반면 딤스데일은 마을 주민의 무한한 존경을 받는 목사지만 그가 진 죄의 짐이 무거워 가슴에 스스로 주홍글자를 새기고 죽어가는 병약한 캐릭터입니다.
그 중간에 헤스터의 전 남편이 있지요. 음흉하고 계획적인 그는 딤스데일에 접근하여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지만, 미움이 곧 사랑이던가, 딤스데일이 죽고 난 후 삶의 목적이 없어져 스스로 자멸해 버리는 불쌍한 캐릭터입니다.
강인한 헤스터의 딸, 펄은 요정 같은 아이로 당시 청교도의 도덕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연 그 자체로, 엄마가 마지막엔 결국 청교도 사회로 돌아가는 반면, 그녀는 어디선가 자유롭게 청교도 사회의 구속력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 암시로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일단 강한 여성 대 연약한 남성이라는 대비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우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는 상반 되는 거죠.
그리고 청교도의 도덕적 결벽주의가 얼마나 인간을 옥죄었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이 명확하면 크게 고민할 일도 없잖아요. 그리고 불안정한 당시의 사회를 안정화 하는데 에도 큰 몫을 했을 거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규제가 자신의 몸에 태생적으로 안 맞는 이들이 있지요.
그리고 그런 규제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기가 더 쉽지요.
작가는 그러한 규제로 가득한, 위선적인 도덕성을 비난하면서도 결국 헤스터가 청교도 사회로 돌아가는 것으로 자신의 조상들에 대한 예의를 갖춥니다.
작가가 살았던 1850년대의 미국사회도 청교도적 가치관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나지 않았던 사회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튼 다시 한 번 느끼는 건데 이야기의 힘은 정말 대단해요.
이렇게 이야기 속에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어려우니 말 이예요.
13. "당신 참 좋아보이네요!", 루이스 월퍼트 저, 김민영 역, 2011
노년의 삶에 대한 발생생물학자의 조언이 담긴 책입니다.
생물학자가 쓴 책 치고는 그렇게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얘기가 많지는 않아서(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책 분량도 부담 없구요.
노화와 그에 따른 질병들. 그리고 인구사회학적으로,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짚어주며, 앞으로 노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우리에게 심어줍니다.
정말 다행인건,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80세에 최고조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사실이죠.
40대가 가장 불행하다고 느낀다는데, 지금의 제 나이가 40대니 이제 진짜로 행복할 일만 남았을까요? ^^
지금부터 나의 삶이 노년의 행복을 결정 짓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