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컬리 > 타인의 삶, 이웃의 삶 그 다름을 메워버린...
그집앞
이혜경 지음 / 민음사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길위의 집'을 통해 처음 이혜경씨를 만났을 때만 해도 젊은 작가라고 생각했는데,한 7년 정도 지나고 나니 젊은 작가라고 하기도 그렇고 중견작가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한 연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글은 치기어린 젊음에 비해서는 점잖고, 노년의 넉넉함에 비하자면 조금은 각박하다. 하지만 그녀의 글에는, 수다떨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네는 편안함 속에 생활의 팍팍함과 신산스러움 앞에서도 절대 비껴서거나 둘러가지 않는 강직함이 있다.

이 책에서 그려내는 여러가지 일상과 현실은, 적어도 내게는 눈돌리거나 보면서도 못본척 하려했던 삶이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살지는 않으리라, 설마하니 내가 저렇게 청승맞게 살 리가 있을까하며 애써 외면해 왔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못난 삶도 있음에 적잖이 위안도 받곤하던, 철저한 타인의 삶이었다.

그런데 살갑게 풀어내는 그녀의 이야기에 마음놓고 고분고분 귀기울이고 있노라면, 이건 타인의 삶이야 라고 밀어놓은 삶의 모습들이 어느새 우리 옆집 혹은 앞집의 사는 모양처럼 성큼 다가와 버린다. 표현하기 나름이었던가, 타인과 이웃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내 사는 모양도 내 이웃의 사는 모양과 많이 닮아 있었는데 나혼자서만 애써 아니라고, 그래도 나는 저보다는 낫다고 우기고 있었던건 아니었는지.

길위의 집 이래 정말 오랫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속이 깊어졌다. 그래서 감추려들면 들수록 훤히 내보이는 속을 어느새 물끄러미 바라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추하고 그악스러운 속을 내다보면서도, 눈길을 돌리지도 동정어린 기색도 띄우지 않는다. 그저 이웃집 꼬마아이 뺨에 묻은 검댕을 닦아주듯 그 속을 보듬어 버린다.

나는 이혜경씨의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삶의 고단함과 지리한 일상도 아무렇지도 않게 담아내는 무던함이 좋고, 요령부리지 않는 미련함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삶의 상처를 매만지는, 툭박스러우면서도 온기어린 그녀의 손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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