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의 검은 마술 - 애도와 멜랑꼴리의 정신분석 프로이트 커넥션 1
맹정현 지음 / 책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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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라캉을 읽는다. 라캉은 나에게 환상대상이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그 대상에 욕망을 투영한다는 것은 나의 환상 속에 그 대상을 들여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내가 결여한 무엇을 보충해 줄 수 대상으로 나의 환상에 꼭 맞아 떨어진다고 착각하는 순간에 다름 아니다. 그러다 대상이 그 환상 속 대상의 자리로부터 튕겨져 나오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현재의 대상이 자신의 환상 속 대상의 원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대상을 상실하고 욕망은 사그라진다. 환상은 각자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욕망이 작동하도록 규정한다. 이러한 환상이 죽었을 때 우울이 발생한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은 욕망하지 못한다.

사랑했던 대상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방식을 포기한다. 자아는 일련의 동일시를 거쳐 만들어진다. 자아에는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 자신을 사랑해주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대상을 떠나보내는 것은 그 사람이 사랑했던 나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 사람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동원되었던 나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소중했던 나의 모습들을 지워나간다. 동일시가 해체된다는 것은 자아가 해체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당연히 그것은 우울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

우울하다. 우울의 끝에서 다시 거꾸로 거슬러 이야기하면 우울한 사람에게는 욕망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욕망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다시 환상을 구성하고 새로운 대상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멜랑꼴리는 상실된 대상이 다른 대상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것이다. 상실이 그 어떤 대상으로도 메워지지 않아 구멍으로 남아있다. 구멍은 블랙홀을 연상하면 된다. 블랙홀은 검은 구멍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우리가 그 구멍 안쪽에 있는 것인지 바깥쪽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깊이를 갖고 있다. 마치 블랙홀처럼 주체를 삼켜 버린다. 마치 죽었지만 죽지 않고 괴롭히는 유령처럼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을 사물로 계속해서 작동하는 것이다.

반면 우울은 상실된 대상이 다른 대상에 의해 대체 가능한 것이 된다. 우울은 치료해야 할 감정이 아니다. 대상을 떠나보낼 수 있어야 새로운 대상을 맞이할 수 있기에 우울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우울할 땐 마음껏 우울해하라. 하지만 쉽지는 않는 일이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당장 결과에 급급한 사회, 속도가 미덕인 사회, 힐링에 매달리는 사회에서는 애도의 시간마저도 가질 수 없게 만들어 버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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