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연애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1
김선희 외 지음 / 바이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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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히 잠든 목동의 입 속으로 시커멓고 묵직한 뱀 한 마리가 들어간다. 인간의 얼굴에서 그토록 많은 역겨움과 핏기 잃은 공포의 그림자를 본적이 없었다. 뱀이 그의 목구멍을 꽉 문 것이다. 뱀은 가장 피하고 싶고 끔찍스러운 운명 중의 운명이다.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증오하거나 거부하려한다면 그 자체로 인간에게는 하나의 지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남은 최후의 선택, 최선이자 최악의 선택은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운명에 직면하는 순간은 마치 외나무다리 위에서 원수를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찾아온다. 천 길 낭떠러지 위에 걸린 외줄이다. 인간이 사랑스러운 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밧줄이라는 것이다. 그가 하나의 과정이고 몰락이라는 점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열일곱 가지 여인상을 제시한다. 그의 연인 1순위는 ‘몰락하는 자’이다.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건너가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연인들이 지닌 매력의 공통점은 바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행 중인 그는 완료형이 아니라 순수 진행형이다. 열일곱 번째 연인상을 보자. 그는 먹구름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과 같은 자이다. 그런 자들은 번갯불이 곧 닥칠 것을 알리며 예고하는 자로서 파멸해간다.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부르짖지만 결코 닿을 수 없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 이 대지 외의 것은 없기 때문이다. 벼룩처럼 밧줄 위를 뛰어보려 하지만 우리를 지키려 삶을 소모하는 대신, 그 운명에 직면하고 있는 내 자신의 한계와 투쟁하는 대신 그 한계를 알고 그것과 춤을 추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니체의 사랑법이다.

삶이라는 네버엔딩 스토리는 우리와 운명이 함께 써내려가는 춤이다. 이 스토리 속의 우리는 더 이상 비천하지 않고 운명 또한 괴물이 아니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 대지에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과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 외의 것은 없다. 양치기는 차라투스트라가 고함친 대로 뱀 대가리를 물어뜯어 멀리 뱉어내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와 같이 웃는 자를 본적이 없었다.(‘6장, 니체, 운명과 사랑에 빠지다’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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