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삼성동 먹자골목 한 편의 선술집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외출 나온 항공사 여승무원처럼 단정하게 벨트를 묶은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지나가는 취객들에게 다정히 말을 건다. 그렇게 서성이기를 한 시간 남짓, 그녀는 마침내 나이든 취객 하나를 데리고 옆 건물의 ‘BAR'라고 써진 간판 불빛 아래로 사라진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거리로 나와 미소를 지으며 취객에게 말을 건다. 그녀의 고용형태와 임금이 궁금해진다. 고용 형태는 비정규직.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 위에 서있는 그녀는 종업원이되 종업원이 아닐 것이다. 임금은 성과급으로 받을 것이다. 얼핏 한 시간에 한명 정도의 영업 실적을 올리는 듯 한데 그녀는 매상에서 몇 퍼센트나 받을 까.

폴란드 출신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가 말하는 마크업(mark-up) 가격 설정은 이렇게 설명한다. 바의 주인은 임대료와 술값 등의 평균 비용을 계산하고 거기에 몇 퍼센트의 마진을 얹어야 할 것인지 생각해 가격을 설정한다. 임대료는 모든 가격 설정에서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은 보장되어야 하는 불변의 상수이다. 상품가격도 임금도 지대부터 깔고 설정되면서 서울의 공간 구조도 변화해왔다. 테헤란로의 수많은 오피스텔 속으로 성매매 업소들이 파고 든 데에도 이것에 원인이 있다. 좁디좁지만 한 달 임대료만 몇 십만 원이 넘는 방에서 그 정도 수익을 올리고도 남는 업종은 흔치 않다. 너무나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공간 구조 왜곡이 그나마 경제를 지탱해주는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래 가로수길이나 서래마을과 같은 곳들은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임대료가 빠른 속도로 치솟았고 그 결과 작지만 특색을 갖춘 카페나 상점들은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해 사라졌다. 대신 고급 브랜드 매장이나 대기업계열 커피 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매장에서 수익을 올려야하는 자영업과는 달리 전국에 걸친 매장들로부터 일정한 수익을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높은 임대료를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지대는 주거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직장이 시내나 강남에 있는 노동자가 서울 외곽으로 다시 위성도시로 밀려나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광역버스에 매달려 파김치가 된 몸으로 몇 시간씩을 통근에 사용하거나 차라리 직장 앞 원룸에서 산다. 주거비용이 비싸지면서 주거공간과 작업공간이 합쳐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고시원이다. 1970년대 구로공단 근처 등지에 있던 쪽방들의 21세기 버전이 바로 고시원이다. 박인규의 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집안이 갑작스럽게 몰락해 고시원에 살게 된 대학생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인 1991년은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과 고시원을 숙소로 쓰기 시작한 일용직 노무자들과 유흥업소 종업원들이 공존하던 시기이다. 더 이상 주거 공간은 쾌적한 곳만은 아니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근처 나무 그늘 밑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듯 일터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비좁은 공간은 넓은 의미에서 일터에 잠겨드는 공간이다.

날로 화려해지기를 그치지 않는 서울 안에서 시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들과 식사할 공간도 마땅치 않은 용역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들이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외면 받는 이의 세계는 따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 이 서울에 있다. 그들이 허물어 질 때 결국 허물어지는 건 우리 자신일 것이다. 기여와 권리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그럴 듯하게 맞아 떨어지는 도시는 우리 모두의 안전한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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