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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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분노의 괴물’로 시작되는 시가 발견되었다. 괴물은 루이 15세이다. 이는 얼마 전 해임되어 유배 간 모르파 백작쪽 사람이 쓴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시민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 시 필사본의 주인은 프랑수아 보니로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로부터 역추적에 들어갔다. 다른 불온한 시들의 전달들도 드러났다. 신부 르 메르시에는 한 세미나에서 기숙학생 테레가 암송하는 시를 받아 적으며 끝에 논평을 붙였다. 그런데 정치적인 내용이 아니라 특정 행에서 각운이 맞아떨어지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이는 신무 기아르에게 전달되었고 기아르는 알레르에게 장갑과 자신이 지는 시를 보내면서 이 시도 같이 보낸다. 이런 식으로 14명을 찾아내 바스티류로 보냈다. 하지만 시인은 결국 찾지 못했다. 시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수사는 무한히 지속되는 일련의 체포들로 빨려 들어갈 듯했다. 시를 필사하면서도 사람들을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시를 수정하고 다를 시와 결합하기도 했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비롯된 개념으로부터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 억지겠지만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 연상된다. 바르트에게 텍스트는 직물이다. 여러 견해들이 얼기고 설켜 이루어진다. 텍스트의 생성은 독자들로부터 이루어지고 한 텍스트에서 다를 텍스트로 지속적인 변형이 이루어진다. 결코 완성이란 게 없다. 지금의 인터넷 게시물들이 생각난다.

 

또 낭송이나 노래로 장르나 변형되어 널리널리 퍼지기도 했다. 소문이나 농담, 재담, 경구들과도 엮여 더 이상 구별해낼 수 없었다. 수사를 지휘했던 다르장송 백작은 “최대한 높이 가라”고 경찰들을 채근하며 이 사건을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삼으려 했는지 모르지만 수사는 아래로 아래로 흘렀다. 체포된 14인들은 모두 중간계층의 전문직들이었다. 이는 특히 공부와 수련에 찌든 젊은 지식인들이 흔히 하던 위험한 놀이 중 하나였다. 정치적 음모는 없었다. 이념적 성향도 흐릿했다. 문학적 허세에 빠진 이들은 여럿 있었다. 그들은 고전 수사학을 따르며 송시를 지었다. 낭독을 생각해 고상한 어조와 세련된 운율을 갖추었다. 궁정인 들에게 이는 저속한 시이다. 그럼에도 몇몇 시는 정말 궁정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있어야지만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나 전쟁 상황, 정치사안 등 모든 것들이 대중의 재판정에 올려졌다.

 

대중들은 노래했다. 잘 알려진 멜로디에 새로운 시구를 붙여 부른다. 어디에 붙이냐 하는 것도 비틀기에 하나다. 거리의 노래꾼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쪽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끼리 모여 돌아가며 잘 알려진 곡에 맞춰 시를 짓는다. 카페로 자리를 옮기면서 문필가들과 함께한다. 그들은 술병을 돌리고 서로 재치 있는 시를 지으려고 경쟁했다. 그들은 급기야 오페라 코미크를 장악했다. 그들이 지은 수백 곡의 노래들이 프랑스 곳곳에서 울렸다.

 

이런 게 들뢰즈가 말한 ‘리좀’이 아닐까 싶다. 경계도 없이 뿌리처럼 ‘그리고, 그리고’하며 뻗어가고 있다. 그러니 머리를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다. 배후를 쫓으려고 해도 쫓을 수 없다. 에두아르 왕자 지지자도 계몽주의자도 이단으로 규정된 얀센주의자도 다 같이 노래한다. 귀족은 궁정에서 궤변논자들은 살롱에서 노동자들은 선술집에서 노래한다.

 

당시에도 계몽 사상가들이 이를 규정해보고자 했지만 철학적 개념에 사회적 현상은 미끄러졌다. 거리의 여론과 철학적 이상은 결코 일치한 적이 없다. 대중은 철학자들이 담론으로 구축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였으며 이런 시도에 조금에 조금도 관심 없이 그 자체로 어떤 힘이었다. 이를 바스티유 습격과 인과관계에서 보는 것도 이 사건 자체로의 많은 이야기들을 놓치게 한다. 14인 가운데 그 누구도 혁명적 사고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파리는 이러한 의사소통 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의 떠들썩한 소리를 루이 15세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은 계몽 사상가들을 포함해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거리에서 끌어올린 어떤 힘이었으며 40년 후에는 멈출 수 없게 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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