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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1229/pimg_744963188811035.jpg)
매번 선거 때마다 투표는 했지만 투표 결과에 대해선 크게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투표권이라고 해봐야 보잘 것 없는 권리처럼 여겨졌고(유일한 권리라 하더라도), 나의 한 표가 나라의 중대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치른 대선은 선거 이전부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전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그동안 스스로를 가장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번 대선에는 왜 그토록 열을 내며 관심 갖고 지켜봐야만 했을까요. 어떤 위기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어렴풋이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니라고 크게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지금까지의 독서 성향을 돌이켜 보면, 사람들이 죽는 내용의 소설이 꽤나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설들을 대개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시간대별로 죽어줘야 뒷 페이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죽지 않아도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은 모처럼 만에 만난 듯합니다. 엄밀히 따져 말하자면 누군가가 죽지 않았다곤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읽으면서 사람이 죽지 않았는데도 느낄 수 있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없는 소설이 재미있을 수도 있다니, 역시 묘한 느낌입니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 일본 고전 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교활한 원숭이가 착한 게를 속이고 게를 죽인 후 재산을 갈취합니다. 이에 훗날 증오심을 품은 게의 새끼들이 힘을 모으고 계략을 세워 원숭이를 향한 복수에 성공합니다. 크게 보면 소설『원숭이와 게의 전쟁』도 민화와 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쉽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방면에서 각계각층의 구성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이 소설 속에서 작은 무리를 이루고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은 술집 마담, 남녀 접대부들, 야쿠자, 화가, 음악가, 비서, 백수, 교도소 수감자, 할머니, 아버지, 형제, 딸 등…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서로가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영향을 받고 하나로 뭉치며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게 떼처럼 응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들이 어떤 연유에서든 서로 얽히고 돕게 되는 과정들이 꽤나 재미있습니다.
소설은 평범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이들은 드러내놓고 어떤 권력에 맞서거나 저항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맞서야 할 권력의 대상이 어딘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고, 권력이 자신들 주변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그동안 자신들을 억압해왔는지 알 길이 없는 소시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여곡절 속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려던 복수의 내용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 재미있어지는 것입니다. 대립을 이루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어떤 구분이 보이진 않지만, 어느 한 편에 속해서 그저 우리 편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힘껏 응원하게 되는 묘한 맛. 선거가 보통 그런 느낌의 것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세상의 흔들림에 정신을 잃고 한참동안 어딘가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뭐가 옳고 그른지 구분해서 생각하고 판단내리는 것조차 버거워진 느낌…….
어떤 싸움이든 자기가 옳다고 끝까지 더 크게 소리 지른 사람이 결국엔 이기는 듯합니다. 승자는 자기 자신의 능력 때문에 이겼다고 여길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을 도와준 주위 사람들이 있어서 이겼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믿고 따라준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이겨 보이겠다는 마음이 물론 중요하긴 합니다만, 승리한 이후 전리품을 나눠 갖는 과정에서 믿음을 주고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해야만할 때, 그때 저지르게 되는 밥그릇 싸움에서 온갖 비리가 생겨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어쩔 수 없는 세상입니다. 착했던 게가 시간이 지나자 교활한 원숭이가 되고, 원숭이의 새끼들이 다시 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략을 세우기도 할 것이고. 아무튼 이런 전쟁은 돌고 도는 복수전의 양상을 띨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소설은 우리에게 묘한 긍정의 기운을 전합니다. 이점이 정말로 희한합니다. 정말로…….
전체적인 이미지는 이미 잡혀 있었다. 그런데 그 세부를 결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이미 정했지만 나에게 그것을 그려 낼 힘이 있을까? 나에게 과연 그것을 그릴 용기가 있을까 없을까?
있니? 하고 도모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있어’라고 대답하는 내면의 목소리와 ‘무리야’라고 대답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123쪽)
아빠가 실제로는 교도소 생활에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딸의 눈에도 훤히 보였고 안심시키려고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짓는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단 하나 위로가 되었다면 된장 만드는 방법을 자세하게 들려주는 아빠의 말투만은 어렴풋이, 정말로 어렴풋하긴 하지만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미량의 색채가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166쪽)
한동안 못 만나는 사이 머리가 꽤 많이 자랐네. 머리가 기니까 곱슬머리가 드러나는구나. 그나저나 늘 느끼는 거지만, 소타에게는 왜 이렇게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걸까.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정말 아무 냄새가 안 나. 물론 향수 같은 건 안 뿌리지만, 남자애들은 뭔가 독특한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소타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어. 침대에서 안을 때도 그랬어. 그렇지만 그게 싫은 건 아니야. 그래서 소타를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442쪽)
그나저나 정치가 되기도 힘드네요. 자기 엉덩이 걱정하면서 지방 재생에 관한 얘기를 떠들어야 한다니. 설마 정치가가 다 이런 건 아니겠죠? (481쪽)
전 그렇게 생각해요. 남을 속이는 인간에게도 그 인간 나름의 논리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남을 속일 수 있는 거라고. 결국 남을 속이는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속아 넘어간 쪽은 자기가 정말로 옳은지 늘 의심해 볼 수 있는 인간인 거죠. 본래는 그쪽이 인간으로서 더 옳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세상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인간은 아주 쉽게 내동댕이쳐요. 금세 발목이 잡히는 거죠. 옳다고 주장하는 자만이 옳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525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